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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에서의 논술 시험
    글쓰기 2018. 9. 17. 08:50
    우리 회사에서는 승진 시험 과목 중에 회사의 지침이나 방침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묻는 논술 시험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경영방침이라던가 최근 언론에 나온 사실들을 외우고 최대한 글에 녹아들 수 있게 연습한다. 그런데 옆에서 보다 보니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을 공유해 보려고 한다.

    글은 글쓴이의 생각을 풀어내는 공간이다. 상대방과의 약속이 얼마나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글에서 어느 부분을 생략하고 새로운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을 얼마나 할 것인가에 국한되어 있을 뿐, 이러한 글쓰기라고 해서 글쓴이의 생각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논술을 준비한다고 공유하는 글들을 보면 문제 지문에서 물어본 것을 그냥 서술형 문제를 풀듯이 나열해 놓은 것이 많았다. 그렇게 하더라도 승진을 하면 그만이겠지만, 평소에 생각을 풀어놓는 글을 쓰는 연습을 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적을 기회를 그렇게 날려 버리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논술 준비를 일찍 준비하는 사람들은 빠르면 두달 전부터 공부를 한다. 그 이유는 최근 이슈화된 사실들이 문제 지문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 일찍 준비하면 외울 거리들이 계속 생겨나기 때문에 글을 쓸 때 헷갈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안에 근거로 나열할 사실들 이야기이고, 사실을 적어가면서 그 사이에 자신의 생각을 끼워넣는 것은 그 전부터 연습이 필요하다. 평소 회사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쓴다고 하면 보통 기안문밖에 쓸 일이 없지만, 그조차도 이러한 연습을 통하여 조금 더 설득력 있는 글이 될 수 있는데 그 중요성이 너무 과소평가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이 글로 적을 것들을 외워서 시험장에 간다고들 한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나오든 말을 잘 엮어서 외운 것들 쪽으로 유도를 해서 종이를 채운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라고는 하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실제 사용해야 할 기술이다. 방향이 틀렸을 뿐이다. 

    외워야 할 것은 사실들이지만, 글을 쓰러 시험장에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은 자신의 생각이다. 하나의 주제가 없는 글은 말 그대로 서술식 답안지일 뿐이다. 쓸 내용의 뼈대, 즉 주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 뼈대가 바로 서고 나서 문제에서 요구하는 사실들이 살로 덧붙여져야 한다. 예를 들어, 언론에 노출될 때 부끄러운 회사보다 자랑스러운 회사가 되어야 하지만 원래 직원들에게 존경받는 시스템이 있어야지, 남들이 칭찬할 만한 것들만 기자들을 불러다가 이야기해 주고 잘못한 것은 돈봉투를 돌려서 막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 보자. 물론 너무 적나라해서 저렇게 적을 사람은 없겠지만, 내용과의 대조를 위해 조금 강렬하게 적어 보았다.

    문제로 저 뼈대와 관계 없는, 우리나라에서 서비스 직종이 늘어나고 있는데 여기에 우리 회사에서 선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나왔다고 해 보자. 그리고 여기서 요구하는 답은 사장이 최근 강조한 틈새시장 발굴과 홍보 부서에서 추진하는 서비스 직종 청년들의 지원 방안 몇 가지라고 해 보자. 

    일반적인 답안지는 다음과 같다.

    보통은 처음 서문에서 서비스 직종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문에 있는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여기에 회사 안에서 돌고 있는 소식을 덧붙이거나 답을 쓰기 전에 요약을 한 내용을 덧붙이게 된다.  그러고 나서 본문에는 틈새시장 발굴에 대해 필요성과 이제까지 우리 회사에서 추진해서 얻어낸 성과, 그리고 앞으로 더 잘 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간다. 그리고 서비스 직종 청년들의 지원 방안에 대해 간단하게 나열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 틈새시장 발굴과 서비스 직종 지원 방안이 이제까지 성과가 이러이러했지만 더 노력해서 국가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말로 끝맺을 것이다.

    겉모습은 논술이 맞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것을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채워 넣은 것이 문제이다. 물론 저런 사항들 하나하나가 문제 의식에 대한 대책이라는 점에서 점수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것을 풀어내면 딱딱하게 베낀 글처럼 되거나 자신감이 없는 글이 되어 버리고 만다. 설득을 하려는 글이 아니라 ‘읽어 줬으니 내가 할 일은 끝났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선포문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내 처방은 하나다. ‘자신의 생각을 넣어라.’

    지문에서 요구하는 것은 단지 문제를 낸 사람이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내가 시험장에 갈 때까지, 막상 앉아서 문제지를 뒤집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중에 들어온 지문 때문에 내 생각이 바뀔 수는 없다. 그래서는 자신 있는 글을 쓸 수가 없다. 지문을 읽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내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 생각이 먼저 있고 나서 지문에 따라 내 생각의 어느 부분에 빛을 비출 것이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지, 생각이 없이 사실만 나열하는 것은 논술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을 써야 하는가? 논술의 기본적으로 깔리는 생각은 평소 나의 신념일 수도 있고 회사의 목표일 수도 있다. 나는 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회사로서의 우리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주제를 많이 사용한다. 논술의 주제라는 것이 모두 잘 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결국 우리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을 제고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자신의 생각이 뼈대가 되고 지문에서 제시한 것들이 그 뒷받침을 해 주면서 동시에 부연 설면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지문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이렇게 어우러져야 자신의 생각이 실제 들어 있는 만큼 조금이나마 더 적극적으로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되고 실제로도 막연히 종이 위에 올려 놓은 정책의 재탕이 아니라 그 정책에 대해서 실제로 이해도가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게 된다. 사실, 머리로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자신의 기준과 관점에 따라서 말을 할 때는 부정적이 될 수도, 긍정적이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같은 내용에 대해서도 종이에 풀어 놓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완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논술은 논리가 우선이다. 하지만 논리라는 것이 논지를 던져 놓을테니 읽는 사람이 알아서 짜맞추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논술의 답안지는 읽는 사람에게 읽는 것이 업무인 이상, 읽다가 지치게 되는데, 중구난방으로 사실들을 던져 놓은 글들 사이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낸 글을 보면 마네킹의 숲에서 오랜만에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울 거라 생각한다. 재미있는 글을 쓸 수는 없지만 적어도 채점관에게 단순히 눈에 들어오는 대로 읽히는 글이 아니라 생각을 전달하려는 사람의 노력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위 지문에 대해 답안을 작성한다면 우선 내가 다니고 싶은 떳떳한 회사에 대해 쓸 것이다. 그 떳떳함에서 우러나는 자부심에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 사회에 본업 외적으로 기여를 하면서 회사의 사회적 가치를 더하면 자부심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 아니라 긴 기간에 걸쳐서 이렇게 해 놓으면 회사가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법적 공방을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거나 기자들을 매수할 필요 없이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준비한 생각을 뼈대로 삼아 엮어 나가는 것이다. 내 주장이 있지만 그 주장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답은 모두 제시할 수 있다. 그 답이 회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단이 되었든 자부심의 결과가 되었든 말하고자 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어떤 형태로든 집어 넣을 수 있으니 어려울 것이 없다. 이런 중심 생각 없이 서로 다른 사실들을 글 안에서 연결하려니 어려운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딱 필요한 만큼만 노출하는 것도 연습해야 하고 어느 정도까지 확고하게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연습을 하면서 자기 스타일을 파악해야 한다. 너무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면 어색해지는 사람이 있고 한 걸음만 물러난다는 것이 자신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것을 연습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어떤 것들이 제시가 되고 나열을 하게 되더라도 나올 수 있는 기본적인 형태는 쓸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글이다. 생각없는 글은 읽는 사람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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