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시절을 생각해 보면, 그 동안 학생 신분으로 하던 대로 해서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당황한 적이 많았다. 물론 학생 시절을 생각하며 일을 한 것이 크게 잘못한 것은 아니고 다만 관행이 달랐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군에서도 나름 그 안에서 관행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병장들이 부담을 가장 적게 느끼는 것을 보면,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처음 접하는 일 같은 것이 아니라 그곳의 사람들, 그 곳 고유의 문화를 접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일 테다. 그래서인가 흔히 학생 때부터 이것저것 해 본 친구들이 일도 금방 적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흔히 알바를 구하거나 하는 직장도 아니고 더욱이 그 친구가 알바를 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지금의 일과는 접점도 없고 단순히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았을 때 일의 요령도 요령이지만 핵심은 사람을 상대하는 법이 아닐까 싶었다.

나도 한동안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문제는 상대방이 나를 대하면서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윗사람과 아랫사람, 시키는 사람과 시키면 하는 사람으로 처음부터 규정을 해 놓고 대할 때였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의 이야기이고 가면 갈수록 일 자체에 대한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대응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일을 하다 보면 과거에 했던 일과 연관해서 생각해서 풀면 되는 일들이 있다. 이것은 일 자체도 그렇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모두 해당된다. 살면서 아무리 못해도 한 번이라도 설득에 성공을 하게 마련인데 그런 경험들을 무기로 삼아 하나하나 쌓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하나씩 돌려가며 사용해 보는 것이다. 한편 그렇게 해도 풀리지 않는 일들도 있다. 특히 행정에 대한 것은 일 자체에 대한 지식과 사람을 상대하는 요령 모두를 망라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 두 가지에 대한 균형 감각이 아닐까 싶다. 

나는 옛날에는 새로운 도구가 생기면 모두 사용해 보았다. 고장이 나면 고치면 되고 고치면 지식이 쌓여간다. 그러면 그 다음에 문제가 생기면 고쳐야 할 정도로 망가지지 않게 조치를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예 꼭 필요한 기능이 아니면 굳이 사용했다가 고치는 데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한때는 미리 지식을 알아두어서 고치는 시간을 줄이려고 했었다면, 지금은 아예 자주 만지지 않으면 고장 자체가 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려고 하는 시점인 것 같다.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 최대한의 성과를 얻으려고 하는 경향은 특별히 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경향이 사람 개개인에 있어서는 굉장한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들여서 뜯어서 고쳐야 할 것들이 생기면 감사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돌아보면, 힘든 시절을 겪고 나서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려 오는데, 힘든 시절 치매 때문에 그 시절을 넘기지 못한 분들의 이야기는 그 시절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꼭 편리함을 찾지는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고자 하는 인간의 특성상 현실이 편한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위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바닷속 생물 중 머리로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정착할 곳을 찾다가 정착에 성공하는 순간 뇌가 점차 사라져 식물이 되는 동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특히 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러한 근거로 운동하는 것이 치매에 좋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나는 핵심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뭔가 주도적이 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 중 치매에 걸린 수녀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아무도 치매인 줄 몰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마 어려서 수녀원에 들어와서 생활하던 그대로 계속 살아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치매란 아마도 뇌를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만큼만 남기는 병이 아닐까. 삶이 단순하면 즐겁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않는다는 정도에서 그쳐야지, 정말 아무 생각 안하고 있어도 되는 정도라면 안 된다. 그동안 치열하게 뇌를 끝까지 사용해서 바둥바둥 살아왔을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세계 정복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재벌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소소하나마 자신과 하는 싸움들에서 절대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보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고 자위하며 물러서지는 않겠다고. 지난 번 3D 프린터의 노즐이 막혀 처음으로 뜯어 보았다. 사용하는 분들은 알겠지만 구조가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 다시 조립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처음에 다시 조립 못 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지만 결국 뜯었다. 그리고 조립을 다시 끝내고 나서 드는 안도감에 깜짝 놀랐다. 예전 2000년대 후반, 아이폰 3Gs를 처음 구매했을 때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서 나도 한 번 뜯어볼까, 하는 생각을 심각하게 했었는데, 다시 조립을 하면 당연히 동작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실컷 고민을 한 끝에 그만두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뜯었다가 다시 조립을 했다면, 동작을 하면 당연한 것이고 동작을 하지 않으면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번 경우에도 그냥 물리적으로 필라멘트, 그것도 가느다란 것도 아니고 거의 2mm 정도 굵기의 필라멘트가 지나가는 경로를 청소 한 번 해 주는 것이니 잘못될 것이 없는데도 안도감이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동작이 안될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나사를 풀 때부터 걱정을 했다는 뜻이니까. 사람이 이렇게 움츠려드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도전이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다. 단지, 조그마한 스릴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멍하게 정신을 놓고 다녀도 몸이 알아서 버스를 타고 출근도 하고 카드도 잘 찍고 다닌다. 하지만 정확하게 그것만 하는 부위만 남기고 뇌를 없애버릴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을 잘 사용할 필요가 있다. 사회에서 뛰어다니느라 사용한 그 만큼 계속해서 사용해 나가야 한다. 단순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사는 것이 나쁜 것이다. 똑같이 판에 박힌 시간표에 따라 살더라도 그 시간표에 맞추기 위해 일상을 이리저리 조절하는 노력이 시간표를 보지 않고도 알아서 시간에 맞는 삶보다 낫다. 

한때는 익숙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아니다. 익숙해지면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다. 전화번호만 해도 이제 사람 이름을 듣고 초성만 치면 알아서 전화를 걸어준다. 예전처럼 수첩을 찾거나 외울 필요가 없다. 그 말은 기억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외우는가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는 법을 어떻게 배우는가가 문제이다. 컴퓨터가 가장 잘 하는 것은 기억이다. 그리고 점차 전자기기의 가격이 내려가면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컴퓨터에게 기억시키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것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삶을 살아감으로서 우리 자신에게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우리의 뇌는 똑똑해서 자신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알아서 사라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머릿속에 담고 돌아다니는 동안 뇌는 나름대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아 떠다닌다고 느끼는 중인지도 모른다. 기억의 시대는 가고 인간에게는 사고의 시대가 왔다. 창의적이니 어쩌니 하지만 그것은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강요하는 표어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이다. 반드시 창의적일 필요는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동일한 행동을 매일 반복하더라도 고도의 설계를 통해 쉬지않고 조율해서 그 행동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고를 하게 된다. 똑같은 행동이라고 딴생각을 하면서 몸이 알아서 반응하게 하는 것이 위험한 행동이다. 회사에서 힘들게 팀을 살려보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더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술 한잔 하며 설득하는 딱 그 정도에서 멈추고 안도한다면 정말 필요한 곳으로는 생각이 영영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의학적으로는 과연 어떻게 결론이 나게 될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침팬지는 영원히 사람만큼의 지능을 얻지 못하리라고 생각을 한다. 인간이 마침내 도약을 한 그 순간 그들도 비슷한 자극을 받았다면 모르겠지만 지능을 더 올리지 않으면 멸종되는 위기가 아니라면 그정도의 도약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뇌는, 사고력은 특히 위기에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위기가 전혀 없다고 느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 아닐까. 이야기가 잠깐 샜지만 한마디 더 거들면 인간은 특히 두려움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에 침팬지가 사람 수준으로 한순간 올라서면 아마 일주일 안에 멸종시켜버리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나이가 드는 것보다 겁나는 것이 나이가 들었다고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니는 것이다. 경로는 말 그대로 노인을 존경하는 것이다. 존경하라고 하는 강요는 전혀 존경스럽지 않다는 것은 세 살짜리도 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자기가 나이가 많으니 존경을 보이라, 라고 하는 것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와서 내가 조선의 왕이니 절을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런 지경에 떨어지지 않는 것, 남의 시선 없이는 자존감이 떨어지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는 것이 내 삶의 목표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는 좋은 받침목이다. 세상을 만든 조물주가 직접 챙겨주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 이보다 더 큰 인권의 근거가 있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정말 많은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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