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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피와 알코올
    일상의 끄적임 2018. 8. 2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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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커피를 많이 마시는 편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대학생 시절 두어 번 담배를 피워 보았는데, 다행히 나는 담배를 피울 수 없었지만, 피울 수 있었다면 못끊었겠다 싶지 않은 적이 없었다. 술을 마시다가 피워 보면 확 취하는 느낌이 은근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술과 담배였다면 통념상으로도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조합으로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술은 지나치지는 않을 정도라면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술을 마시는 것보다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그런 건 아니다. 술 마시는 것 자체도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좋다. 안주가 그렇고 함께 마시는 사람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여름날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맥주는 그야말로 꿀맛이다.
    이와는 달리 커피는 그냥 일상을 함께하는 존재이다. 한때는 책을 찾아보며 어떤 생두를 어떻게 배전하면 어떤 맛이 나오고, 그런 것을 거의 공부하다시피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주는 대로 마신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집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집에서 마실 원두를 한 커피전문점에서 로스팅해 놓은 대로 커피 산지 종류만 보고 구입해 오기 시작한 것이 그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집에서 네스프레소를 사용한다. 캡슐 이름에 따라 맛의 강도와 느낌이 다른데, 캡슐마다 맛이 거의 일정해서 편리하다. 술과는 달리 혼자서 즐기는 음료이다. 책을 읽을 때도 반드시 옆에 있지 않으면 어색하다. 그렇다고 늘 책만 펴면 커피 생각이 나는 그런 지경은 아니지만, 커피향과 책이 꽤나 어울리는 조합인 것은 사실이다. 이 블로그도 커피향이 나는 곳이었으면 싶지만, 커피향이 어울린다는 말이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멍하게 있을 만한 곳이라면 더욱 좋겠다. 사람마다 커피향이 가리키는 관념은 다를 것이다. 그저 창밖을 바라보는 여유일 수도 있고 골치아픈 문제를 붙들고 있으면서 떨어진 집중력을 끌어올릴 핑계일 수도 있다. 나에게 커피는 새벽에 읽는 책의 친구이자 키보드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고도 오타를 내지 않게 도와주는 약이자 뭔가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한 모금 천천히 삼키며 곰곰이 생각해 보며 그 문제를 조금씩 풀어가는 술자리 친구와 같다. 달콤하지는 않다. 쓰지만 향기롭고, 정신을 붙들지만 내 정신으로 온전히 남겨 둔다. 커피가 없다면 하루의 시작부터 온전하지 못할지 모른다.
    어떤 결심을 하면 거기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도 하나하나 선택지를 검토하고 지나친 망상으로 보이는 것들은 지워 가면서 다시 한 번 그 길을 내다본다. 커피를 마실 때와 마시지 않을 때를 비교하면 커피가 없다면 뭔가 조급증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을 하는 것 같은.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나선다는 자신감은 커피 한 모금 삼키는 여유에서 나온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검은 음료 한 모금이 그 순간을 스스로 무장을 할 수 있는 긴 시간으로 만들어 준다. 그리고 마치 순식간에 기분을 바꾼 듯 앞으로 나설 힘을 준다.
    캡슐 커피를 마시기 한참 전, 처음으로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를 마시게 되었을 때는 아직 나에게 적절한 카페인의 양을 알지 못해 하루에 열 잔이 넘는 커피를 마신 적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 밤새 잔기침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처음에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잔기침이 카페인의 금단 증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많은 양을 섭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양이 늘어났던 그 때에도 커피 중독이어서 쉬지 않고 마셨다기보다는 마치 알콜중독자들이 일상을 잊기 위해 점점 많은 양의 술을 들이키듯 의욕이 상실되고 걱정이 늘면서 점점 더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게 되었던 것 같다. 술은 취하는 기분에 마시지만 커피는 각성하는 느낌에 마신다. 술과 같이 커피를 마시는 느낌도 어느 지점을 지나치면 그 정도에 비해 부작용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내가 그 정도를 깨닫는 데 무려 6개월이 걸렸다.
    지금은 하루에 서너 잔의 커피를 마신다. 아침에 한 잔, 점심에 한 잔, 저녁에 한잔. 단, 저녁에 마시는 커피는 디카페인으로 한다. 그런 걸 보면, 카페인의 효과도 효과이지만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의 영향도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한 잔을 내려 홀짝이며 십여 분 뉴스를 흘끔흘끔 훑어본다. 그리고는 책을 펴고 읽는다. 필요한 부분을 워드로 옮겨 적으며 틈틈이 홀짝 홀짝 마신다. 커피가 끝나는 시간이 다시 운동 가는 시간이다.
    운동 다녀와서 아침 식사를 한 후 다시 커피를 내린다. 이 커피는 아침 후식이 아니라 점심 때 마실 커피다. 텀블러에 정성껏 담아서 가방에 넣는다. 가방은 물통 하나와 커피 텀블러 하나, 그리고 휴대용 키보드 하나만 쏙 들어간다.
    점심이 되면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와서 간단하게 책을 읽거나 블로그에 글을 쓴다. 텀블러에 가져온 커피를 에스프레소 잔에 따르고 두세 번씩 나누어 마신다. 텀블러에 따르는 커피는 보온 텀블러답게 뜨끈해서 적은 양이지만 원샷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천천히 다 마시고 나면 점심시간이 되어 사무실에 불이 켜지고, 점심 시간 모드에 빠졌던 내 정신도 마치 술집이 오후가 되고 해가 지면서 불을 켜지듯 다시 부활한다.
    저녁은 집에서 먹는다. 저녁을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며 가족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다시 책을 펼 때도 있고 텔레비전을 볼 때도 있지만 글을 쓰지는 않는다. 왠지 그렇다. 저녁은 받아들임과 대화의 시간이지 키보드의 시간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커피 향에 빠져 하루를 보낸다. 주말도 커피향으로 관찰해 보면 그리 다르지 않다. 저녁 늦게 맥주가 등장하는 것 정도가 차이랄까. 맥주가 등장하는 날이면 술기운을 믿고 저녁에도 디카페인 커피 대신 일반 커피를 마실 때도 있다. 술과 커피를 함께 마시면 안 좋다고 하지만 두어 시간의 간격이 있으니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러도고 아침에 일어나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회식 때 마시는 양만 아니면 딱히 선잠을 자서 피로가 쌓이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에게는 커피가 알코올 음료처럼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한때 커피전문점에 뭔가 커피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행세하던 사람이 아메리카노에 기름 같은 게 떠 있다며 커피를 바꿔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었는데, 커피와 나의 생활을 보면 그 때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날 정도로 나에게는 정말 커피가 생활의 윤활유와 같은 존재이다. 뭔가에 의지하는 것이 강한 의존만 아니면 오히려 무의식중에 안정감을 준다고 하는데, 이 커피가 없었다면 무엇에 의지를 했을지 모르겠다. 오늘도 으쌰, 하며 커피를 손에 든다. 그리고 조용히 키보드를 들여다 본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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