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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 이야기
    생각에 잠기다 2018. 10. 1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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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평소에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그리고 꾸더라도 보통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의 과거가 배경인 이야기들을 꾸는데 이것은 책에서 읽은 것인지 텔레파시로 들은 것인지 아예 나 자신이 아닌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꾼 것이라서 신기했다. 더욱이 내가 들은 것이 맞는지 책을 찾아보는 장면도 있었다. 워낙 신기해서 별로 기억나는 곳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더 잊어버리기 전에 간단하게 적어 본다.

    기억하는 부분은 짧다. 약간 스타게이트의 외계인과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하면 좋을 것이다. 전 우주를 돌아다니는 외계인이 있고 그 외계인이 쓴 책을 내가 읽고 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식량을 찾고, 지식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단백질 구조를 가지고 기본적인 저장소를 만들면서 자신의 지식을 자연이라는 책에 새겨 놓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무는 어떤 내용이고, 초식동물은 무슨 내용이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나무들과 동물들은 자체적으로 진화를 하고 유전자는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최초에 책의 내용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문자들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몇 억 년이 지나 돌아오더라도 그 생물들이 이어져 내려오기만 했다면 그 내용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지능이 있는 동물은 스스로 그 지식을 보존하기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동물들 중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는, 자신이 지식을 단백질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전수해도 될 만한 생물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를 해 본다. 이 정도까지 책을 읽고 있던 중, 울분에 차 있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이 신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책에 없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들어보겠는가?”
    “그래 좋아.”
    목소리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섬뜩하게 굵고 낮은 목소리라고 느낀 것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반말로 대답했다. 마치 한국어를 못하는데 굳이 한국어로 말을 건 상대에게 대답한 것처럼. 하지만 상대는 반말이라고 반박하지 않고 그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꿈답게, 말로 된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이 되는 이야기였다. 책을 읽다보면 책의 내용을 가지고 상상을 하게 되는데 바로 그러한 상상이었다. 마치 책의 한장면을 가지고 시작한 상상을 어느 새 책을 더 이상 읽지 않고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에서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처럼.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떠 있다. 저 멀리 육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커다란 배 안에는 감옥이 하나 있다. 그뿐이다. 배를 움직일 사람도, 먹을 것을 줄 사람도 아무도 없다. 그 존재 하나만 덩그라니 그 배 안에 갇혀 있다. 그 배는 닻으로 고정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배에서 멀어져 가는 작은 배, 하지만 조각 배처럼 작지는 않고 그래도 판옥선 정도 크기는 되는 배가 떠나가고 있다. 육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육지로 다가가며 멀리 지구라트와 같은 수많은 계단으로 된 피라미드가 서 있다. 멀리서 본 느낌으로는 돌로 된 것 같지는 않고 작은 산을 그런 모양으로 깎은 듯 하다.
    그때 목소리가 말했다.

    저 피라미드를 지을 지식을 내가 주었다. 직접적인 지식 전수의 최초의 사례이다. 나 이전에 누가 그런 시도를 했을지 모르나, 나로서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내 지식은 저 동물들의 단백질 아주 작은 곳에도 숨어 있다. 그들은 그것을 읽지 못한다. 그 지식을 다시 읽을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그들의 피 한방울만으로도 나는 이 행성에 최초에 생명이 생겨날 때 내가 새겼던 지식을 읽을 수 있다. 얼마인지도 모를 시간동안 내가 새긴 것은 거의 내용이 똑같았다. 별을 보고 다가와서 그 근처에서 행성을 찾아 그 직전에 있던 행성에서의 상대적인 거리와 방향, 그리고 몇 번째인지, 그리고 과연 어떤 생물을 만들어낼 계획인지, 그리고 얼마간 있다가 갈 것인지, 중간에 다른 생명을 만난 적은 있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사실들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생물을 만들지 않고도 지식을 저장할 방법을 찾았다. 저 동물들은 의사소통을 한다. 그 말을 문자로 옮기면 그 문자로 지식을 저장할 수 있다. 그 문자가 생물처럼 스스로 존재하려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읽을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새긴 지식들은 훗날 내가 돌아왔을 때 읽을 것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지식을 가진 생물들도 자신에게 새겨진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저들은 그 밖에 있다.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저장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저들을 만들어낸 나에게도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저들에게 직접 지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이제까지 있었던 적이 없는 일이다.

    피라미드 옆에는 작은 기념관처럼 커다란 돌을 세워 울타리를 삼은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 한 가운데에는 당연히 제단이 있겠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곳에는 신기하게도 그 피라미드의 설계도인 듯한 그림이 그려진 바위가 있었다. 바위에 그려진 그림은 마치 레이저 가공을 한 듯 가느다란 선이 완벽한 도형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가 우거진 산에서 먼저 나무를 없애고 둥근 포물선 모양으로 생겼던 언덕을 직선으로 만들고 계단 부분에는 베어낸 나무와 돌로 깔아서 비가 오더라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했다. 문자들도 많이 있었지만 갑골문자와 비슷하지만 모두 직선으로 되어 있었다. 룬문자의 약간 복잡한 형태라고 해도 될 듯했다. 쐐기문자는 확실히 아니었고 곡선은 아예 없었다.

    저 피라미드를 만들 지식을 내가 주었다. 저들은 다섯 세대가 지나도록 일을 해서 피라미드를 완성해냈다. 피라미드는 그저 하나의 상징일 뿐이었다. 내가 들어갈 것도 아니고, 내가 위에 앉을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 지식 가운데 아무데나 있을 수 있었다. 집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것을 저들도 생각하고 내가 생각한 것을 저들이 내 눈앞에 만들어주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은 배를 만들었다. 그들은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지었지만 피라미드 건설이 끝나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량이 되었다. 그는 다시 배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에게는 피라미드도 필요없고 배도 필요없었지만 피라미드는 그들이 그를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만들었고, 배는 그들을 위해 만들었다. 당연히 물에 뜰 수 밖에 없는 배였지만 그들은 신기해하고 두려워했다. 그 배에 올라타게 하기 위해 천둥과 같은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거의 반 협박처럼 밀어 붙여 사람들은 배를 탔다. 그리고 그곳에도 생물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조만간 사냥이 이루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탈 배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지상에서는 동물들처럼 어디나 있을 수 있었지만 물 위에 떠 있는 느낌을 자신도 느껴보고 싶었다. 물 속에 있는 것은 그저 다른 동물과 같은 행동일 뿐이고 배를 만든 그 동물들과 똑같이 느껴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드디어 그는 좁은 배 안에 몸을 구겨 넣고 물 위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떠다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과 그 느낌은 다른 어딘가에서 만들어질 생명체에 또다시 새겨지게 될 것이다.

    그러던 그가 하늘에서 분노에 사로잡혔다. 감정은 그의 것이었다. 그가 분노에 사로잡힌 것, 그 감정에 사로잡힌 원인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낱 동물에 지나지 않는 그것들이, 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나마 약간의 지능이 있어 배우는 것을 보고 신기해서 눈을 맞춰 주었을 뿐인데 그들은 정말 그가 자신들과 동등해서 대화를 한다고 느껴 것이다. 감히 감정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그 앞에 당당하게 풀어놓았다. 그의 보살핌에 과분한 감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담스럽다는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분노에 사로잡혀 나에게 한참을 그 자리에서 기다리게 했다. 무슨 설명을 할 것 같았지만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뭔가가 끓어오르다 말다 하는 것이 내 심장까지 느껴져서 마치 짓눌리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까지 치솟아 아무 모습도 그려주지 못했다. 낮고도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나에게 말했다.

    피라미드를 지을 지식을 준 것이 누구인가? 저 배를 만들 지식을 준 것이 누구인가? 저 철로 된 무기를 만들 지식을 준 것이 누군인가? 그 모든 것이 문자를 만들어 낸 자신들의 공이던가? 문자가 없었던들 나는 너희에게 지식을 전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식을 전해주지 않은 자들이 나에게 덤볐다면 이미 없애버렸을 것이다. 내가 새긴 지식은 너희 뿐 아니라 이 행성의 어떤 생물체도 다 가지고 있다. 너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너희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은 내가 관심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특별하게 생각했다면 문자는 주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희의 깊은 곳까지 바꾸어 너희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기록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다시는 이러한 동물들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저 존재들도 한순간에 없애 버릴 것이다.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내 기록을 넘어서는 목적을 가진 생물들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저 동물들이 무엇을 할 줄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저 동물들이 내 기록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주제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알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알게 된다면 믿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믿게 된다면 나를 없애고자 할 것이다. 자신들의 기록만을 남기고 싶어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을 멈추었다. 심장을 울리고 머릿속을 울리는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그는 울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표정은 굳어있었고,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분노는 그의 슬픔이 뿜어내는 것이었다. 그의 슬픔은 태초의 어둠만큼이나 짙었고 그의 분노는 태초의 빛 만큼이나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는 분노를 머리에 품었고 슬픔을 가슴에 품었다. 그 슬픔은 분노를 삼킬 만큼이나 차가웠지만 그의 분노는 그의 슬픔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었다.

    그는 배를 가라앉혔다. 그는 서서히 하늘로 떠올랐다. 피라미드 주변과 해안가에서 동물들이 부지런히 나무를 옮기고 있었다.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돌은 더 이상 옮기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노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듯 한숨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그는 슬픔에 가득찬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 머리카락 한올한올, 내 혈관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느낌인지 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의 분노와 그의 슬픔 모두 끝까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때 그가 눈을 떴다. 그의 눈은 하늘에 있었다. 하늘은 푸르렀지만 그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너는 기록 도구일 뿐이다. 그 이상 넘어오지 마라. 너는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라. 마지막 경고다.

    너무나 섬뜩해서 책을 펼쳐 그 페이지를 읽어보았다. 분명히 써 있었다. 마지막 경고다, 라고. 나는 감정이 있었다. 나 역시 그 사람들을 보며 서운함을 함께 느꼈고, 몇 세기나 함께 했으면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하지 그랬냐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그에게 부족했다. 그리고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그에게는 불경이었다. 나는 이해하려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이해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의 손을 거치고 그의 촉감을 거쳤다. 세상 모든 것의 존재 이유는 그것이 다였다. 그 이상 자아를 갖는 것은 언젠가 그를 향해 칼을 겨누는 결과가 될 것이었다. 필요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필요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한순간에 나는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깨달았다. 풀 한 포기, 지렁이 한 마리 모두 내가 간직한 그 기록들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나는 똑같은 기록을 가진 수백억 개의 생물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 기록 외에는 존재가치도 없었다. 내가 하는 말, 내가 남기는 기록 모두 문명과 함께 사라져버릴 운명이었다. 문명 뒤에 남을 그 심연의 운명에 나는 온몸이 떨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리고 나 역시 쓸모없는 생명을 유지하다 불씨를 끌 것이었다. 삶이 허무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 발밑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모두 한 가지 기록에 불과했다. 고통과 기쁨이 모두 한데 묶여 우리를 만들었지만 정작 우리는 의미가 없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알았다면 그만 가거라.

    그렇게 아침에 눈을 떴다. 그렇게 서럽게 맞이한 아침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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