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보고 나면 그냥 '참 좋은 영화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후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 가는 대로 적어볼 생각입니다. 제 블로그를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화나 책 후기를 따로 모아놓지는 않습니다. 인기 작품을 그 시점에 포스팅하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영화 블로그도 아닌데 그렇게 고려하면서 포스팅해서 얻는 것도 별로 없을 뿐더러 웬만해서는 좋은 영화면 나중에 다시 보지 그걸 어떻게 적어 놓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뭔가를 적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포스팅을 하기 때문에 그 와중에 무슨 말이 나올지 모릅니다.
한편, 트럼보라는 영화는 무료 영화 관람 기회가 되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SKT 사용자 전용관이라고 해서 옥수수에서 무료로 볼 수 있게 몇 편씩 편성을 해 주는데 이걸 또 TV에 연결해서 볼 수 있게 되어 있더군요.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https://namu.wiki/w/트럼보
이 영화는 Doltan Trumbo라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전기 영화입니다. 첫 느낌은 Imitation Game이나 Beautiful Mind와 비슷했습니다. 아마 전기영화이고 배경이 비슷한 20세기 초반이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 배경은 매카시즘이 떨친 미국입니다. 이 매카시즘에 Beautiful Mind의 내쉬는 잘 빠져 나갔지만 트럼보는 법을 근거로 실제로 대항했습니다. 어쩌면 내쉬도 그 후유증이 그 병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트럼보는 의회모독죄라는 명목의 괘씸죄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오게 됩니다.
영화는 매카시즘이 시작되고 여기에 저항한 헐리우드 사람들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트럼보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의 이름이 당당하게 찍힌 스파르타쿠스가 개봉하기까지 정부로부터, 그리고 선동가들로부터 견제받고 이웃들로부터 '국가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생활들, 그리고 연명하기 위해 익명으로 각본을 쓰던 상황들을 하나하나 재연해 냅니다. 간신히 연명을 하면서도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도 있고, 연명은 하지만 원칙을 머릿속에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언제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어느 시대가 되었건 그러한 상황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들을 계기로 저항하는 사람들이 서로 갈라서기를 바라는 법입니다.
여기에 에세이로 미국을 반공주의로 선동하던 헤다 호퍼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그것을 적절히 위협과 버무려 사용할 줄 아는 정치인입니다. 직업이 정치인은 아니지만 하는 걸 보면 자신의 영향력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시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딱 그렇습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반공산주의는 때마침 영향력 과시에 좋은 도구로 등장하는 셈입니다.
정치적인 입지를 위한 싸움에 예술이 피해자가 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제나 예술을 기술로 보는 사람은 있어 왔고 거기에 자본이 따라주면 언제든 교체 가능한 존재로 빠지기도 합니다. 헐리우드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영화는 말합니다.
http://cinefox.com/vod/view?product_seq=92137
이 영화에 대한 댓글들을 보면 언제나 우리나라의 40년 전과 현재와 비교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여기에 대해서도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중간에 트럼보가 11년형을 받고 감옥에서 간신히 적응하고 있을 때 탈세 혐의로 J. 파넬 토마스(J. Parnell Thomas)가 같은 감옥에 들어옵니다. 바로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 위원장이지요. '당신은 진짜 범죄자이고 나는 아니다'라는 대사와는 달리 감옥에서 만나는 장면은 영화상의 설정일 뿐, 실제로는 트럼보와 같은 감옥은 아니었지만(그래도 헐리우드 텐 중 Lester Cole과 Ring Lardner, Jr. 두 명과는 같은 감옥이기는 했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탈세 혐의로 18개월의 징역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광풍을 진두지휘하던 사람도 법을 위반하면 합당한 징역을 살고 나온다는 사실은 자기 편이면 아무리 엄청난 불법을 저질러도 감싸고 도는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잘 보여줍니다. 그러한 법적인 판단 하나하나가 모여서 실질적으로 법이 사회의 기준이 될 수 있어야 법치국가라 불릴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법전을 펼쳐놓고 무죄, 유죄, 몇년 형 이런 건 일제 때나 박정희 정권 때도 하기는 다 하던 것이니까요.
그리고 또 한가지, 타자기여서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독수리 타법이 무척이나 특이했습니다. 욕조에 들어가서 글을 쓰는 것도 신기하기는 했지만, 글로 쓰는 것보다 조금 빠를 것 같은 독수리 타법, 그것도 타자기에 치는 것이 그런 작품들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천재는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겠지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과연 지금 키보드로 뚝딱 하듯이 글이 문서로 나왔다면 그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벽돌을 쌓더라도 시멘트 말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무조건 빠른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꼭 필요한 작업도 있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