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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피를 마신다는 것
    일상의 끄적임 2018. 10.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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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컵을 들어 입술에 살짝 대고 손목으로 가볍게 입으로 커피를 흘려보낸다. 눈을 감고 천천히 코를 자극하는 달콤한 커피향과 혀에 달라붙는 커피 맛의 조합을 음미한다. 컵에 담긴 검디검은 액체는 그냥 음료처럼 보이지만 마시는 순간 회오리처럼 모든 맛과 모든 향을 한꺼번에 휘감으며 입속을 가득 채우고는 그대로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내가 처음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마 커피를 즐긴다는 것은 저런 게 아닐까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십 년이 이미 훌쩍 넘은 이야기고, 생활에 커피가 완전히 자리를 잡고 나자 커피는 주인공에서 꼭 필요한 조연으로 변신을 하였다. 조연이기는 하지만 없으면 생각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조연이다.
    유럽 역사에서 커피와 커피숍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커피숍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보니 마치 아테네의 아고라처럼 커피숍에 모여서 수많은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었고 이런 사람들 한쪽에서는 사상을 발전시켜나갔던 것이다.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가 발전을 하고 뼈대를 갖게 되고,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고 나면 사상이 된다. 이것을 커피 덕분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여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이 더러웠던 유럽에서 중국에서 차를 우려 마시듯 술을 담가 마셨는데 이것을 커피로 대체하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커피는 머리를 좋게 해주는 음료가 아니다. 오히려 여러 사람이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장시간의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그러한 아이디어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싶다. 술집에서조차 한 잔을 두고 훌쩍거리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뭔가 좋은 생각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술이든 커피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나름의 역할을 가지는 도구에 불과한 셈이다.
    나에게도 커피는 무언가를 하며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무언가이다. 커피의 맛과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 그 자체를 즐길 수도 있지만 사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을 즐기는 것이지 커피를 즐긴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지금 나의 커피라이프를 위에서 묘사한 것처럼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노트북을 켜고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그리고 하얀 화면을 멍하게 바라보며 손에 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책상 한쪽에 내려놓는다. 화사한 커피향이 코를 찌르지만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는 순간 다시 까만 글씨에 집중한다. 다시 그 커피가 들리는 순간은 문득 키보드 소리가 멈추었을 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피를 물 마시듯 마신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샷이 추가된 진한 맛이 좋고, 설탕이나 시럽이 들어간 것보다는 아메리카노나 라떼가 좋다. 라떼는 주로 아침에 마시고, 그 밖에는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대화를 나눌 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호하지만 책상에 앉아서 마실 때는 두고두고 마셔도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뜨거운 커피가 좋다.
    회사에서의 점심 시간, 책을 읽으며 집에서 내려서 보온병에 담아간 진한 아메리카노를 에스프레소 잔에 따라서 한 모금씩 마신다. 물론 에스프레소 잔을 사용하는 것은 큰 잔에 따라서 기껏 보온병에 담아간 커피가 식어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 우아함이나 느릿느릿한 커피숍의 분위기와는 관계가 없다. 그리고 그 휴식 시간이 끝나면 읽은 책의 내용을 생각한다. 커피 대신. 커피는 의미가 없다. 커피를 마시는 그 분위기, 그 상황이 의미가 있다. 커피가 어울리는 독서, 커피를 마시며 써갈기는 메모...
    커피는 이렇게 생활에서 떼 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아무리 저녁 식사 후 담소를 나누며 마시는 커피라고 해도 그 자리에 커피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커피 없이 지내는 날도 있지만 커피가 있는 날, 없어도 된다는 생각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커피는 중심이 아니다. 꼭 필요한 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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