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감기의 느낌
    일상의 끄적임 2018. 9. 19. 07:30
    반응형

    멍하다.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건져 올리기가 쉽지 않다. 내가 모르는 생각들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데 쓰는 것 뿐만 아니라 말을 하려고 해도 자꾸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히 무슨 생각인지 보고 나면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래서 지금 그 생각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라도 알 수 있을텐데 구체적으로 올라오질 않는다.

    술을 많이 마시고 나면 다음 날부터 길면 사흘까지 우울한 느낌이 들면서 세상에 대해 욕심과 미련이 적어지는 상태를 겪는다. 생각이라는 것은 하기 때문에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의욕없이 말 그대로 '의무'로만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다. 정말 많이 마시면 그 정도가 심해지겠지만 그렇게까지 마시지는 않기 때문에 이틀 정도는 딱 이만큼의 고생을 한다.

    그런데 지난 출장에서 2박동안 난방이 되지 않는 방에서 지냈더니, 저녁까지는 시원해서 좋았는데 새벽에 기온이 떨어지니 추워서 깨곤 했는데 그러고 나니 그대로 감기에 걸려 버렸다. 딱 하루는 두통에 콧물, 기침이 모두 합쳐져서 독감인가, 싶을 정도였는데 다음날부터는 콧물만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이게 일주일이 넘어가니 계속해서 머릿속이 멍한 듯한 상태가 사라지지 않는 게 대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이다. 의욕도 없고, 해야 할 일만 하고, 여가 시간에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멍하게 유튜브를 보고 있다. 유튜브를 많이 봐서 멍한 건가 싶어서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보아도 뭔가 저 아래에 쓸 만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게 뭔지만 모르겠고, 책도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책은 읽기는 읽는다.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을 빌려 왔다. 산업혁명을 지나면서 경제관이 어떻게 변해 왔는가에 대한 책인데 철도 건설 시대까지 들어오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머리로는 읽고 있고 도움도 많이 되고 있는데, 그리고 그 사실도 알고 있는데 흥미로워서 계속 읽어 나간다거나, 다음 장이 궁금하다던가, 이 사람들이 이러이러했다니, 그렇게 해도 되는가라던가 하는 호기심이 아예 없다. 마치 숙제라서 읽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글자를 하나씩 해독해 나가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그나마 술을 마시면서 즐거운 댓가라고 생각할 수나 있는데, 이건 아무것도 없이 내내 가라앉아 있기만 하니 답도 없다. 빨리 낫지도 않는다. 기침을 하고 머리가 괜찮은 편이 훨씬 낫겠다 싶다.

    이번 주는 월요일에만 운동을 가고 아직까지 가지 못했다. 무기력증인건지 아침에 시간을 뻔히 보고서도 다시 자버린다. 일어나서 물론 후회를 하지만 그 후회도 정말 건조하게 '일어났어야 했는데'에서 끝난다. 월요일에 운동 갔다와서 조금이라도 상태가 나아졌다면 그 핑계로라도 가 볼텐데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글도 점점 재미없어진다. 써야 해서 쓰는 정도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하지만 쓰는 내가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은 글이 재미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머릿속으로 '지식'이 뱅뱅 돈다. '물론 같은 말을 많이 사용해서 자신감 없어 보이지 말자', '자신 있는 표현을 쓰자', '처음에 생각으로 글을 쓰지만 점점 빠져들어서 글이 내 생각을 조금씩 뽑아내게 하자' 이런 말들이 머릿속을 헤매 다닌다. 신기하게도 문장들이다. 컴퓨터그래픽처럼 한글 문장들이 리본처럼 떠다니는 그런 건 아니고 소리도 아니고 글자도 아닌 것들이 머릿속에서 글을 쓸 때 조심하라고 외치고 있다. 분명 사고에는 문제가 없다.

    운동갈 시간이 조금 지나서 일어났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내용을 건너뛰고 눈만 글자들을 훑고 있는 상황은 분명 아니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내용들은 모두 떠오른다. 단기 기억에라도 잘 저장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역사적인 흐름이 있었는지도 빠뜨리지 않고 잘 나와 있어서 이해를 했다. 집중이 잘 되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유튜브로 음악을 틀었다. 말 그대로 '집중이 잘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내용을 저만큼 기억하고 있으니 집중은 하긴 한 거다. 다만 머리는 조금 많이 읽기 싫었나 보다. 이럴 때면 '내 안의 나'라는 존재가 정말 있는 건가 싶다. 하지만 실체는 없다. 그냥 내가 하려는 것과 그것에 대한 몸의 거부감일 뿐이다. 유튜브로 튼 음악은 예전에 공부할 때 듣기 좋아하던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이다. 하지만 듣기 싫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대체, 하고 싶은 건 뭔데?'

    무슨 정신분열도 아니고 저정도 생각까지 들었으니 나는 이만 빠져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샤워를 했다. 뭔가 머리로 입력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오늘 아침 발행으로 예약되어 있는 글을 다시 읽으며 오탈자 검색을 하고 띄어쓰기를 교정했다. 이런 활동은 그냥 정상적으로 했다.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그런 활동이 힘든 것 같다.

    다행히 감기 하나 걸렸다고 회사 생활에 방해가 되고 그러진 않는다. 내 머리는 내 말만 빼고 다 잘 듣는 듯 하다. 기안문이나 보고서도 잘 읽고 잘 쓴다. 내가 읽으려는 책만 못 읽고 블로그 글만 못쓴다. 빨리 감기가 나아야 할텐데 큰일이다. 회사생활 외적인 즐거움이 사라졌다. 감기는 작은 증상일 뿐이다. 하지만 작은 사고 아닌 사고로 사망하는 사례도 많다. 일중독이라는 건, 입사할 때부터 그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라도 쉽게 걸리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 혹시 일중독이 감기 바이러스 때문에 생겨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반응형

    '일상의 끄적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돋이  (0) 2018.10.12
    커피를 마신다는 것  (3) 2018.10.01
    이상적인 하루  (0) 2018.08.30
    커피와 알코올  (0) 2018.08.22
    레트로 키보드  (0) 2018.08.20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