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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트로 키보드
    일상의 끄적임 2018. 8. 2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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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고 열풍이라는 말이 어느덧 진부하게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 이제 열풍이라기보다 오히려 골동품에 애착이 생기듯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 같은 것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로 모두의 정서 어딘가에 있는 공통적인 지향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붓과 벼루, 또는 펜과 두꺼운 종이 같은 것은 사용할 수 있지만 불편해서 특별한 사연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게 되는 것에 반해 복고 열풍이라는 것은 유행이 함께하거나 시대적인 상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정상적인 경로로는 아예 시도를 하지 못하는 종류의 것이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전화기와 같은 전자기기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마트에 가니 레트로 오락실이라는 것을 보았다. 옛날 오락실에서 동전을 넣고 즐기던 간단한 게임을 넣어 둔 것인데, 이제는 오락실은 없고 PC방만 가득한 현실에서 그런 오락실이 다시 생긴다고 해도 굳이 돈을 주고 할 것 같지 않은 게임들을 모아둔 장난감이었다. 마찬가지로 옛날의 공중전화나 폴더폰은 구입을 한다고 해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공중전화는 회로만 어떻게 하면 집에서는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굳이 상대방을 미리 확인하지도 못하는 그런 제품을 사용해야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들어 보인다.

    또한 껌전지라 불리는 옛날 일제 휴대용 기기에 많이 들어가던 사각형의 충전지가 들어가던 워크맨과 같은 테이프 재생 카세트도 있다. 나도 옛날에 구입한 테이프는 가끔 그걸로 듣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모두 파일로 옮겨서 이제는 파일로 재생하고 있다. 굳이 불편을 감수하고 그 때의 감성에 잠기는 것이지 불편을 감수하고 시대에 역행하여 실제 생활에 사용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 중 타자기는 이러한 레트로계에서 늘 빠지지 않는 터줏대감이다. 실제의 타자기는 한때는 작가로서의 멋의 상징이자 부의 상징이었고 후에는 공문서 작성을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할 사무용품이었다면, 지금은 그 제품에 꼭 맞는 먹지와 같은 소모품이 계속 생산되어야 사용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 굳이 종이에 인쇄해서 편집도 할 수 없는 형태로 처음부터 굳히는 것으로서 실생활에서는 어떤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런 점에서 최근 쏟아져 나오는 블루투스 키보드들이 블루투스 제품의 생산과 사용의 편의성을 이용해서 외관을 타자기 모양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타자기의 감성은 유지하면서도 그 출력물을 종이 대신 태블릿이나 컴퓨터로 옮겨서 재활용이 가능한, 디지털 파일로 생성해 주는, 지금 시대에 적합한 물건으로 만들어 주었으니 이러한 장점은 실제의 타자기를 어디서 구해서 사용하는 것을 앞지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레트로 키보드는 어디까지나 키보드이다. 키보드의 버튼을 누르기 힘들게 함으로써 타자기의 감성을 유지하는 기계이다. 하지만 타자기는 지렛대 역할을 하는 키를 가지고 있다. 타자기의 감성과 지렛대 키, 이 두가지가 만나는 지점은 그저 그 소리와 느낌뿐이다. 정말 타자기처럼 지렛대 역할을 하는 키를 가지고 있는 키보드는 나오지 않을까?

    최근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알게 된 타자기형 레트로 키보드만 세 종류가 된다. 그 중 두 종류가 옛날 타자기에서 종이를 끼우는 위치에 태블릿을 끼울 수 있게 되어 있다. 내가 사용하는 것은 태블릿 거치대가 아예 없는 모델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차이는 별로 없어 보인다. 결국 '누르기 힘든 모양의 기계식 키보드'일 뿐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겉으로만 약간씩 다른 케이스를 씌운 블루투스 키보드인 것이다. 언젠가 정말 타자기와 비슷한 구조에 종이에 활자를 찍는 대신 키보드 회로를 눌러주는, 그런 형태의 키보드가 나와 주길 바란다.

    아, 물론, 그런 형태의 키보드는 커다란 단점이 있다. 바로 휴대성은 현저히 결여될 것이라는 점이다. 옛날 전자식 키보드가 나오기 전의 타자기가 책상 위에 모셔 두어야 하는 물건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물건이 나온다면, 막상 본다면 나 역시 구입하기 전에 약간은 망설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그렇지만 레트로는 사용하는 사람이 불편을 감수하고 사용하는 물건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출시된 레트로키보드들 역시 그다지 휴대성 면에서 좋지는 않다. 나 역시 휴대용 블루투스 키보드는 타자기형이 아닌 돌돌 말아서 한 손에 들어가는 그런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일단 가벼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저 기다려 본다. 다음 번에는 어떤 모양의 레트로 키보드가 나올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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