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화제가 되었다고 하는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를 보았다. 시청률을 보면 딱히 화제가 되었다는 게 드라마를 방영함으로써 영향을 끼쳤다기보다는 제작 발표가 화제가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작가와 연출자, 방송국의 시기적인 결합이 괜찮아 보였다. 결과적으로 시청률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고 했지만 첫회만 보아서는 잘 알 수 없었다.
주인공들을 소개하는 판을 깐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한 1,2회는 성격을 또렷하게 제시하였고, 배경 역시 구체적으로 잘 표현되어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그 안에서 그 인물들이 어떻게 아둥바둥 하게 하려는 건지 기대가 되었다. 거만한 작가와 추종자의 이야기는 베토벤 바이러스가 생각났고, 적극적이고 뭔가 불우한 과거가 있을 것 같은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을 통하여 듣는 것은 소설 속 나레이션을 듣는 것 같았다. 스스로는 아픔을 드러내지 않고 열심히 사는 한 명과, 스스로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하는 한 명이 그 아픔을 드러내며 공유하는 과정이 하나의 스토리를 이룰 것이라는 것이 예상이었다.
물론 큰 틀에서는 잘 맞았다. 그런데 코믹한 요소가 분위기를 압도하는 주인공들의 특징을 잘 섞어주던 것이 어느 순간 유령이 나타나면서 배경이 사라지면서 타성에 의해 흘러가는 분위기가 되어갔다. 연애의 밀당을 묘사하려면 집중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주변 인물들을 주변이 아닌 머나먼 변방까지 밀어 버린 것은 전체적으로 단조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나중에 주변 인물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에 대해 항의하는 장면이 코믹하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장면부터는 아예 주인공의 성격 자체가 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카리스마 넘치고 자신감에 직진만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당인 것이 아니라 원래 허당인데 그 사람들이 감싸 주고 있었던 것처럼 묘사되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어느 정도 기존의 감정선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진실이 밝혀지면서 해방된 조선에의 감동이 조금씩 밀려와야 하는데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이 일종의 추리의 결과가 아니라 단번에 주어진 데다가 그러한 감동도 급하게 유도하는 바람에 '드라마의 주제가 원래 애국심 고양이었나?' 싶어 거부감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인물들 간에 티격티격하던 갈등이 유령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방법을 알아보게 되면서 순식간에 흐지부지된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일을 저지른 과정에 비해 악역을 맡은 인물의 경과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의 악역과 비슷한 결말인데 그 드라마에서는 반성 자체를 모르는 사이코패스라 결국 미쳐 버리고 마는데, 여기서는 어느 정도 감성적으로 예민한 작가인데 마지막에 우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고 사이코패스가 마치 자기는 감성적이고 착한, 그런 척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이 단지 질투 때문에 망가진 것도 아닌, 답이 없는 어중간한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밀정 역을 맡은 사람 역시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라면 그 사실이 어떻게 도망가야 할 이유가 되는 건지 설명이 없어 존재감이 분명 있는데 마치 우연 대신 끼어들어간 역할처럼 되었다.
하지만 드라마 자체로는 부족한 점이 좀 있으나 역시 드라마 외적으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드라마는 한 주 만에 다 보았기 때문에 책을 읽은 것으로 생각하면 만족스럽기는 했다. 그런데 드라마 초기에 인터넷으로 어떤 내용인지 대충 찾아보는데, 역시나 전문직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라면 어느 드라마에나 따라붙는 글을 하나 보았다. 드라마가 작가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한다는 글이었다. 세계적으로 사인회를 하는 장면을 보고 약소국의 자격지심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심지어 극 속에서 간접 광고로 등장한 책을 읽는 장면을 보고 그런 에세이에 감동을 받는 게 작가냐는 비아냥이었다. 인터넷에 굳이 그런 글을 배설하는 게 작가라면 작가 자체가 필요 없을 것이다. 인기가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뭔가 드라마 자체를 욕하고 싶어 안달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블로그는 일종의 혼자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비꼬는 글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공적인 '기사'가 이렇게 쓰여진 것을 보니 나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라는 공간이 읽는 사람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표현할 필요가 없는데 불필요하게 기분을 상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아침에 웃으며 인사 한 번 한 것의 나비효과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굳이 테러하듯 할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