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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 집짓기
    글쓰기 2018. 10. 16. 06:27
    글을 쓴다는 것은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생각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로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남이 볼 수 있는 뼈대도 있어야 하고 형태가 되는 글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 안에 들어가서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겉으로는 번쩍번쩍한 벽돌집이지만 그 안쪽까지 벽돌로 차 있으면 안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들어가 느낄 수 있는 여지도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글쓰기가 집짓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집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델하우스는 아니다. 나도 나중에 다시 읽기 위해서가 주 목적이지, 내 생각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토론을 하기 위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그 정도로 정성들여 글을 쓰는 편은 아니다. 어쩌면 이렇게 쓰는 글은 표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느낌이나 아이디어를 박제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처음에 쓰고자 했던 것이 글의 흐름에 따라 흘러다니다가 사라져 버리는 일이 있다. 아예 다른 글이 써지거나 쓰는 중간에 논리를 따라 가다 보니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 틀렸다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이다. 이것은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데, 단순히 글이 바뀌는 경우는 다시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을 쓰면 되지만 생각이 틀렸다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에는 그 글은 없었던 글이 된다.

    핵심은 글의 목적이다. 글을 가지고 전달하고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글을 쓰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자체이다.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제대로 담지 못하면 주장도 약화되기 마련이다. 먼저 표현이, 내용이 생각대로 자리를 잡고 나서야 전달이든 뭐든 글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법이다.
    처음에는 결론만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생각을 하다 보면 그 결론에 이르는 생각이 점차 구체화되지만 그것이 흐릿한 상태에서 그치면 결국 잊어버린다. 하지만 생각을 계속 한다고 그 중간 과정이 납득이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시각적으로 눈앞에 펼쳐보여야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다. 결국 글은 말로 된 생각에 글자라는 형태를 씌워주는 과정인 셈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글을 쓰면서 생각에 옷을 입혀주고 나면 잊어버리지 않는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글로 썼기 때문에 다시 읽을 필요가 없는 글도 많다.

    옛날에는 글로 전할 만한 아이디어라는 것도 귀하고 그 중에서 다시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낸 사물도 귀했기 때문에 책은 신성시되어왔다. 나는 주역이라는 책을 점치는 도구로 사용하게 된 계기도 상대적으로 오래된 책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모세오경이 책의 형태로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자로 번역되어 중국에 전해졌다면 모세오경도 주역만큼이나 유서깊은 역술책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이라는 형태는 개인적인 생각을 적는 시대라고 해서 쉬워진 것이 아니다. 동굴에서 살던 시대를 벗어나 통나무집을 짓기 시작할 때와 비교해서 지금이라고 건물을 짓기가 쉬워진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재료와 기술이 발전하고 구조도 다양해지면서 비용이 증가한 것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그때보다 기교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생각 자체가 많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하면 법을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글을 쓰던 시대에서 지금처럼 복잡한 체계를 가진 세계에서 법학과 관련된 글을 쓰는 시대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쉬워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 세상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입장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매일매일 겪어내는 시간 자체가 옛날과 비교해서 무척 복잡하다.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이 개인의 것이라고 해서 쉬울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는 것은 글쓰기를 더 어렵게 할 뿐이다.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그만큼 설명해야 할 것도 많기 때문이고 표현할 방법을 오히려 더 많이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한 방법이 없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문장이 흘러나와서 받아쓰기하듯 적어내려가는 사람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벽돌을 만들듯이 머릿속에 흘러다니는 생각들을 반죽해서 굳히고 다듬어 문장으로 만들어 쓴다. 그리고 그 문장들이 집이 되어 다시 그 생각들을 다시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정성을 다하여 집을 짓듯 쌓아 올린다. 그 글을 읽고 새로운 생각을 해 내는 것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공간을 나누어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건물을 지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그 공간을 소유한 사람의 몫이듯이. 그렇게 나는 글로 내 생각의 집을 짓는다. 그 생각이 녹아 있는 글이라는 것은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 생각이 벽돌이 되어 무늬를 감상하며 자기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글을 후에 그 글을 다시 읽는 나에게도 새로운 글이 나오는 통로가 된다. 글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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