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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보를 얻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게 해 주는 책들도 많고 감성을 건드려 잠시동안 나의 모든 신경을 마비시키는 책들도 많다. 공통점은 그 이후로 내가 세상을 보는 방법을 작은 각도나마 바꾸어준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과 짝을 지어 주고는 한다. 우연한 기회에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이 장편소설인 경우에는 그 느낌을 머릿속에 온전히 재생하자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간혹 그렇게 짝지워진 음악으로 대신한다. 그러면 마치, 철봉에서 떨어질 때 순간적으로 지나가던 기억들처럼 그 책의 내용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며 다시 경험하는 듯한 감동을 얻어내게 되는 것이다.
최초의 구체적인 경험은 아마 소설 람세스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엔야의 베스트 앨범테이프를 틀어놓고는 잊어버리고 그대로 다섯 권을 다 읽어 내려갔다. 엔야의 노래들은 몽환적이고 간혹 가사가 거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람세스의 내용들이 꿈처럼 다가오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목숨을 건 전쟁도, 마법사와 신들과의 교감도 자연스럽게 다가오며 내 생의 다른 부분인 것처럼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의 그 테이프가 베스트 앨범이다 보니 엔야의 노래는 대부분 람세스로 연결이 되고는 한다. 실제로 람세스를 읽으며 떠오르는 것은 영화 미이라2에서 밤에 비행선을 타고 이집트 상공을 날아가는 장면이다. 그런데 엔야의 곡을 들으면 그 장면과 람세스의 사건 사건들이 함께 겹친다. 이것은 뒤죽박죽이 아니라 매번 다르게 결합되며 뭔가 신선한 충격을 준다.
최근 읽은 책에서도 이러한 감동을 얻었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이 책을 읽고 나니 뭔가 하고 싶을 때, 혹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도망가는 마음으로 1분, 2분 미루는 것보다 적극적이면서 끌려가지는 않을 수 있는 장소가 하나 마음 속에 생긴 듯한 느낌이다. 사이코네틱스 서적에서 항상 이야기하는 '머릿속의 쉴 만한 저택'이 이것을 뜻하는게 아닌가 하는. 마치 내가 직접 본 것 같은 따가운 햇빛 아래의 넓게 펼쳐진 건조한 들판과 올리브 나무들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곧바로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아래서'가 떠올랐다. 굳이 장면을 고르자면, 여주인공이 구입한 집을 수리하는 장면. 집을 수리했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기쁨을 가감없이 표현할 수 있게 되어가는 그 과정이었다. 이리저리 여유롭게 뻗어가는 생각과 나름의 관점으로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겹쳐지며 휴식이 늘어지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옭아매고 있던 기준에서 잠시 벗어나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순간 매순간을 새롭게, 낯설게 느끼는 것, 거기서 창의력이 나오고 경쟁보다 더 큰 결실이 이루어진다는 어떻게 보면 평범하지만 조금만 부주의하면 잊을 수밖에 없는 교훈이 있다.
-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 국내도서>시/에세이
- 저자 : 정수복
- 출판 : 문학동네 2011.03.23
조금 벗어났지만, 이 책은 첫 장을 읽는 순간 노래가 떠올랐다. 가벼운 듯 자유롭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사이에서의 고뇌가 가치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는 이책에 어울리는 앨범. 노르웨이 그룹 'Secret Garden'의 2002년 앨범, 'Once In A Red Moon'. 이 앨범은 최근 특히 'You Raise Me Up'으로 유명해진 앨범이다. 처음 접하게 된건 Secret Garden의 앨범인 줄 모르고 인터넷으로 접했다가 옛날 만화 블루의 OST의 앨범명이자 한 곡의 제목인 'Once in a blue moon'과 제목이 정반대여서 관심이 갔을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간혹 마음이 심란하거나 혹은 울적해지고 싶어 맥주 한캔에 손이 갈 때 이어폰을 꽂고 듣곤 하던 앨범이다. 이 앨범이 우리 집에서나마 제 자리를 찾게 된 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프로방스는 좋은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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