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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에서 세상을 기록하다독서록 2015. 3. 25. 12:31반응형
이 책은 한 편으로는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한 명의 기자를 소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자로서 쌓은 소양을 잘 보여줍니다. 원래 일종의 자기계발서로 분류될 수도 있어서 거부감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읽고서 이런 책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일화나 기자가 되면서 겪은 힘든 일들은 정말 책 속에 남겨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면 언론사의 사명, 경제적으로 정보의 공정성을 유지하도록 언론인을 규제하는 언론사, 그리고 증권계 이야기들이 모두 한꺼번에 개인에게 쏟아질 때의 그 충격을 오롯이 견뎌낸 한 명의 기자가 쓴 에세이집이다, 한 마디로 하면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언론에 대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소식은 전해져야 하니 있어야겠지만, 권력이 주어지면 안된다, 정도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론사가 필요악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권력에 결탁하거나 광고에 혹해서 쓰라는 건 안 쓰고 딴소리만 하는 등 필요악이 되는 조건이 있지만 언론사의 존재 자체가 필요악인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기자라니까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의 경제 기자는 또 다른 호기심의 대상이지요.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은 언론사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증권 시장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막연히 그렇게 생각만 할 뿐입니다. 월 스트리트도 돈많은 기관들이 험상궂은 얼굴로 희미하게 웃음 짓고 있는 곳이 아니라, 일부는 그런 회사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트레이더니 뭐니 하는 직업을 가지고 들어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뉴욕 역시 "화려함 이면의 부끄러운 모습"과 같은 관용어로 어울리지 않는, 그냥 사람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책을 덮고, 처음 든 생각은 "아, 영어... 해야겠구나."였습니다. 그만큼 세계에 대한 동경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구글어스로 한 번 돌려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옛날에 가 보았던 밴쿠버 생각도 나네요. 그야말로 뭔가 에너지를 불태우는 사람들 옆에 있을 때에 일시적이나마 느껴지는 막연한 희망이 보입니다.
PART ONE 뉴욕, 20대의 마지막 일탈
- 월스트리트에서는 무식한 것도 죄
- 기자, 그 매력적인 이름을 갖다
- 월 스트리트 인연
- 처음의 의미
- 무모한 도전 vs 현명한 포기
- 실패, 그리고 또 다른 제의
PART TWO 상어가 득실거리는 곳, 월스트리트
- 월스트리트 전망 : 황소 vs 곰
- 상어가 득실거리는 곳, 월 스트리트
- 타임스퀘어에 살면 영혼을 잃을 수 있다?
- 월 스트리트의 할머니
- 내가 사는 세상
- 폭설도 피해가는 월 스트리트
- 월 스트리트의 성공 신화
- 주가 폭락의 범인은 살찐 손가락?
- 마녀는 있어도 골드 미스는 없다
- 공짜 술이 없다?
- 타이거의 힘
- 한국이 뉴욕을 움직일 때
- 2010 월드컵
- 체리콜라를 좋아하는 할아버지, 워런 버핏
- 윤리적인 기자
PART THREE 싱글, 맨해튼이 아니면 뉴욕에 살 이유가 없다
- 일탈이 일상이 되는 곳, 맨해튼
- 외롭거나 혹은 자유롭거나
- 뉴요커가 되어 간다는 증거
- 뉴욕은 지금 디톡스 중
- 뉴요커는 미트패킹에 가지 않는다
- 먹는 데 목숨 거는 뉴요커
- 뉴욕의 심장, 센트럴 파크
- 뉴욕이 준 선물
- 나이를 잊다
- 20대, 만끽하라
- 30대, 가끔 멈춰서도 돼
- 서른 그리고
PART FOUR 나의 이야기
- 꿈이 없던 아이
- 신의 직장을 버리다
- 사람 냄새나는 기자
- 국제 기구를 꿈꾸는 이드렝게
- 21세기형 회사란
- 야생에서의 유년기
- 해병대식 교육
- 한 꼬투리의 두 완두콩
- 인생 Restart
PART FIVE 엄마의 편지
- 향기 나는 사람, 엄마
- 그대, 삶의 그릇에 무엇을 담고 싶으신지?
- 3초만 여유를 갖자
- 네게 들려 주고 싶다
- 힘들게 달리다 지치거든 엄마란 안식처로 와 쉬어가렴
- 부드러운 카리스마 안에 당당함이란 가시를 품어라
- 엄마의 잔소리가 네게 비타민이 되길
- 혜원아, 축하해!
- 너만의 무기를 챙겨
- 고맙다
- 너는 얼마나 아름다운 향기를 지니고 있니?
- 소중한 그 사람을 사랑하렴
- 우리 딸은 잘할 거야
- 매일매일이 행복이란다
- 봄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미소를 보낸다
-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 가
12. 새벽 6시, 유럽에 이어 뉴욕의 선물 시장이 출렁이기 시작한다. 내가 있는 곳이 진정 세계 금융의 중심임을 실감하기에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14. 월 스트리트를 담당한 지 막 1년이 넘은 기자가 버티기에 이 곳은 너무 격하다. 여기에 와서 절실히 느낀 건 '기자는 무식한 게 죄'라는 것이다. 월 스트리트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금액은 작은 나라를 살 정도이고, 나는 이를 취재하는 기자다. 내가 쓴 기사에 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작은 실수도 자만도 게으름도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14.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기자는 슈퍼맨에 가까운 존재라고 한다. 기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기사로 쓸 때 그 '아는 사실'은 피상적인 '앎'이 아니라 그 일의 본질을 꿰뚫는 '앎'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 새롭게 알게 되는 '앎'을 압축시켜 기사로 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하기에 매사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내 생활을 잘 표현하는 말인 듯 하다. 수박 겉핥기식 얕은 지식으로 기사를 썼다가는 개인적 망신은 물론 로이터 통신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19. 처음은 뭐든 설레기 마련이지만 그 감정은 결국 사라지고 사랑의 뜨거움도 결국 시간에 식어버리지만 꿈에 대한 열정만은 쉽게 바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20. 그렇게 기대했던 기자 생활은 새벽 5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주 7일간 경찰서, 병원, 소방서 등을 미친 듯이 돌며 수시로 보고하고, 혼나고, 추가 취재하고 또 보고하는 막노동이었다.
23. 팩트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문전박대를 당해도 상대방이 나에게 이야기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 정도 고생 없이는 감히 기사를 쓸 자격도 없다는 걸 수습 기간을 통해 몸소 배웠다.
23. 대중은 결국 기자의 글을 통해 사회에 대한 생각과 관점이 달라진다. 이러한 막중한 일을 부여받은 기자는 객관성과 정확성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기자는 절대 편안한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기자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마인드이고, 호된 신고식인 수습 기간을 거쳐야만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다.
26. 뉴욕 시에 있는 작은 섬, 맨해튼 끝자락에 붙은 그야말로 Street인 월 스트리트에 위치한 몇몇 투자은행 때문에 미 증시 뿐 아니라 세계 증시가 하루아침에 폭락한 것이다. 그 소름 돋는 위력에 단 5초 만에 매료되었다. 당시 만났던 월 스트리트 담당 기자는 뉴욕 인근의 뉴저지 주에 살았는데, 그는 집에 다녀올 시간이 없어 3일째 당직 아닌 당직을 서고 있었다. 세계 금융의 중심이 흔들리는 급박한 상황을 경쟁 언론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보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능숙하게 기사를 써내려가는 그의 모습에서 한동안 잊고 지낸 저널리즘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26. 그 즈음 로이터 편집국의 최고 수장인 편집장이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는 생애 가장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를 쓰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세계적인 경기 불황은 기자에게 좀 더 의미있고 중요한 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28. 뉴욕에 오기 전에는 무모한 도전보다 현명한 포기가 훨씬 값진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런 내게 이 곳의 첫인상은 '감히'라는 엄두를 내게 하고, 20대의 마지막 일탈을 꿈꾸게 했다.
32. 나는 평소 열에 아홉은 포기할 정도로 '현명한 포기'의 열혈 팬이지만 결국 선택한 하나에는 죽기 살기로 매달린다. 나머지 아홉에 골고루 쏟아부었을 노력과 열정을 그 하나에 쏟는다. 그 하나가 월 스트리트였다.
32. 퇴근 후 꼬박 5시간을 <바보들에게 가르치는 주식거래 Stock Trading for Dummies>라는 초보 책부터 <월 스트리트 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즈>, 미국 투자 전문 주간지인 <바론즈Barron's>까지 구할 수 있는 경제지는 모조리 가져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했다.
36. "도전은 대가가 따르지 않는다. 도전은 밑천 없이 시작하는 것이기에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다."
42.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지원서를 내고, 시험을 치르고 인터뷰를 했다. 그 과정을 왜 다시 해야 하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억울하거나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았다.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끝까지 해 보고 싶었다.
42. 오랜만에 푹 잠을 자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단잠은 새벽 4시 반에 뉴욕에서 걸려온 전화로 끝이 났다. "그곳은 새벽일텐데, 일찍 소식을 전하고 싶어서. 우린 네가 월 스트리트 팀에 들어와서 매일 이 전쟁터 같은 주식시장을 함께 커버하길 바라는데, 어때?"
43. 그는 로이터는 국적보다 실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월 스트리트와 맞짱 뜰 배짱 두둑한 사람이 제격이었다고.
46. 뉴요커들에게 뉴욕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절반은 월 스트리트라고 답할 것이다. 반대로 가장 싫어하는 곳을 물어도 대답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곳은 세계 경기 침체의 주범으로 비난받는 한편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49. 타사 기자들과 매일 아침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지만 취재 경쟁에서 상냥함 따위는 없다. 취재하러 가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취재 수첩은 두고 마이크가 달린 펜 하나만 챙겨 객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50. 통신사 기자에게는 사실상 마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대기하고 있다가 사건이 터지면 곧장 기사를 써서 넘겨야 한다. 실시간으로 기사를 보내야 하기에 일반 신문사나 방송사 기자보다 불규칙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50. 1851년, 런던 증권거래소에 사무실을 열고 주식시세와 증권 뉴스를 속보로 전하기 시작한 로이터 통신은 한때 '영국의 육군이나 해군보다 강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전 세계 뉴스의 흐름을 주도했다. 하지만 경제 뉴스의 중심이 미국에 맞춰지면서 현 뉴욕 시장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창립한 경쟁사 블룸버그 통신에 밀리기 시작하자 2007년 글로벌 미디어 그룹인 톰슨 코퍼레이션과 합병했다. 이후 공식 명칭을 톰슨 로이터 Thomson Reuters로 바꾸고 뉴욕으로 본사를 이전해 현재는 150개국, 약 230개의 도시에 지국을 두고 있는 세계 최대의 경제 통신사가 되었다.
55. 한국에서는 삼성전자 실적 발표 때가 가장 바쁜 날 중 하나였는데, 여기는 매일 삼성전자 같은 기업 20곳 정도가 실적 발표를 하는 것 같았다. 주식시장 마감인 4시부터 15분간 실적 기사를 10개 넘게 쓴 적도 있다.
56. 이곳 기자들 특히 월 스트리트 팀의 기자들은 뉴욕 주식시장 아니 세계 주식시장을 가장 먼저 연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쓴 기사를 타 회사 기자들이 으레 따라 쓸 것이라는 충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62.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 자세를 낮추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무식함을 당당히 인정하기로 했다. 월 스트리트에서 얕은 지식으로 기사를 썼다가는 단번에 들통나기 때문에 모르는 건 그렇다고 인정하는 게 오히려 그들에게 다가가기 수월했다. 잘 모르는 주식 용어나 전문 분야를 접했을 때 대충 넘어가거나 짐작해서 기사를 쓰지 않고, 해당 분야에 대해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 쉽게 설명해 달라고 솔직히 부탁했다.
63. 이곳 사람들에게 능력을 검증받고 신뢰를 쌓기 위해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남보다 배로 뛰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68. "세상의 무수히 많은 변수 중 나는 결코 이기고 지는 것밖에 몰랐다. 결국 본질적인 바닥은 이기고 지는 것. 이기면 좋은 것이고, 싫으면 못 견디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주간 없이 단순히 두 가지의 감정만 가지고 살아가는 게 버겁지만 어찍하겠는가.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월 스트리트'라는 세상이고, 매섭고 바짝 말라버린 이 감정에 충실해야 하는 게 우리의 일인 걸."
72. 나와 친한 트레이더 한 명은 1년 내내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그래야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는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월 스트리트는 세상에 그 어떤 일이 일어나든 멈추지 않고 돌아가기에 그 페이스에 자신을 맞춘다는 것이다. 이런 월 스트리터를 보면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77. 무언가를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절실히 느낄 수 있다. 눈치를 보면서, 이 말을 함으로써 나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을 100가지 이상 생각하느라 말할 기회를 놓치는 때가 많다.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 사람에게 흔히 보이는 '좋은 게 좋은거'라는 생각은 유대인에게는 찾아보기 힘들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닐 때가 많고, 그럴 때는 자신의 생각을 믿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83. 내 손끝에서 나오는 기사 한 줄, 한 줄이 전 세계에 헤드라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월 스트리트 팀을 향해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소리치기 시작했고, 그런 혼잡함 속에 나는 침착하게 기사를 보내야 했다. 1초만 늦게 보내거나 오보를 내는 순간 로이터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내 기사를 보고 거래하는 전 세계 트레이더들과 그들의 고객에게 수십 억의 손해를 입힐 수 있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그야말로 역적으로 몰릴 판이었다. 내 손끝의 힘이 무섭게 느껴졌다. 통신사 기자임이, 세계 최대의경제 통신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깨에 큰 짐이 되어 내려앉았다.
88. 매일 아침 9시 30분 특히 오픈 10~20분 전 객장의 모습은 총성만 들리지 않을 뿐 한마디로 전쟁터다. 트레이더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서로 부딪치고 그 와중에 클라이언트한테 들어오는 주문지를 작성한다. 또, 오프닝 벨을 찍기위해 몰려든 언론사 카메라 플래시로 사방이 분주하다. 좋게 포장하면 에너지 넘치는 곳이지만 결국 누군가 돈을 잃어야 누군가 돈을 딸 수 있는 이곳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92. 그녀는 내게 삶의 밸런스에 대해 말해주었다. 밸런스는 일도, 가정도, 자녀도 잘 돌보는 가운데 오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려면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써야 하기에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가끔 정신과 상담비가 들기도 하지만 일만큼 사랑과 결혼 그리고 자녀를 기르는 것 또한 삶에서 빼놓을 수 없다고. 인생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맛의 행복이 있는데 그 중 하나에만 익숙해지면 결국 밸런스가 깨지게 된다고 말했다.
92. 긴 업무 시간과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낙이 가족이고, 남편과 딸들이 있어 일에 더 열정적일 수 있다고 했다.
110. 대구에서 워런 버핏에게 참 감동했다. 나를 기억하겠다고 말해줘서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지 느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세계적인 부자가 자신이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꼼꼼히 기록한다는 건 상상하지 못한 이리었다. 보통 그 정도의 재력가라면 '만나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해야지'라고 거만할 수 있는데 그는 사소한 만남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일상에 들어온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110. 세상을 기록하는 것이 결국 역사가 되고 온전한 내 것이 되는 게 아닐까? 사소한 것을 기록하는 습관이 바로 삶에 감사하고 삶을 즐기는 한 방법인 것 같다.
124. 싱글에게 맨해튼은세상 최고의 것만 선물하는 남자친구이자, 애인이자, 외롭고 서글플 때 생각나는 가족이자 친구 같은 곳이다. 이런 매력 때문에 맨해튼이 아닌 그 어떤 다른 곳도 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
여행이 일상이 되면 아무리 좋은 곳에서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설렘은 어느새 진부해진다. 하지만 뉴욕의 일상은 느슨해지는 법이 없다. 일상의 일탈이 아니라 일탈이 일상이 되는 곳이 맨해튼이다. 매일이 눈부시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이곳에서는 늘 새로운 일에 젖어드는 설렘과 행복을 맛볼 수 있다.
128. 한국에서는 일과 대학원을 병행하며 나를 위해 쓰는 에너지와 시간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남들과의 관계에 중독되다 보니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불필요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 인맥을 관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무리하게 약속을 잡았다. 겉으로는 기자이니 별 수 없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 직업 탓이 아니라 그저 뭇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였다. 그런데 그 귀찮고 골치 아픈 시선이 뉴욕에 와서 갑자기 사라지니 아이러니하게도 급격히 외로워졌던 것이다.
128. 뉴욕의 에너지에 매료되면서 '군중 속에 있지 않아 외롭고 불안한 느낌'은 오히려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남을 의식하지 않아 그 어떤 것도 가능한 무한대의 가능성이 열린 곳이다. 이방인이기에 길을 잃을 자유가 있는, 남들을 따라 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게 당연한, 학교에서 배운 일률적인 삶을 사는 훈련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이다. 남들 다 있는 직장이 없어 자존심 상하거나, 남들 다 하는 펀드나 적금이 없어 불안하거나, 남들 다 하는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굳이 외로워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131. "역시 한 번에 아침 식사, 신문 읽기, 출근을 하느라 허둥지둥하는 걸 보니 뉴요커가 맞네요."
133. 그때 알았다. 뉴욕은 나를 견고하게 만드는 곳이라는 걸. Jay-Z라는 유명한 힙합 가수의 노래에도 나오듯, 뉴욕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건 그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극과 극을 체험시켜 웬만한 것에느 ㄴ놀라지 않게 단련시키는 곳, 나만의 경쟁력이 되어 주는 도시가 바로 뉴욕이다.
139.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화병이라는 마음의 독소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남의 시선에 지나치게 민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옷만 봐도 그렇다. 뉴요커들은 남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옷을 입는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ㅇ낳는다면 비키니를 입고 센트럴 파크에 누워 책을 읽기도 하고, 겨울에 반팔을 여름에 긴팔을 입기도 한다. 뉴요커들이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이유는 '한 번 사는 인생 내 마음대로 살겠다'가 아니라 '내 인생은 아무도 대신 살아 주지 않는다'는 마인드이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 보며 살기에는 자신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걸 안다.
153. 뉴욕의 봄은 꽤 새침하다. 기간도 짧고, 따뜻한 햇살과 포근한 날씨가 익숙해질 즈음 폭우가 쏟아지거나 구름이 뒤덮인다. 뉴요커들은 봄바람이 살랑이는 4월이 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온다. 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센트럴 파크다. 이곳은 '뉴욕의 심장'이라 불릴 정도로 뉴요커들에게 중요한 삶의 일부이자 자존심이다.
나는 햇살이 좋은 날이면 퇴근 후 미리 준비해 둔 운동화를 신고 60번가, 센트럴 파크가 시작되는 콜럼버스 서클로 향한다. 회사를 나와 복잡한 브로드웨이를 지나 15~20분 정도 걷다 보면 웅장한 도심 속의 푸른 숲이 나를 반긴다. 따스한 햇볕을 쬐어 좋고 무엇보다 사람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154.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여유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1퍼센트가 바쁘게 모여 산다는 뉴욕이지만 센트럴 파크에서만은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가 있다. 그것이 짧지만 한없이 푸르고 싱그러운 뉴욕의 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늘 긍정적인 삶을 살고 싶어하는 뉴요커들의 본모습인 듯하다. 바쁜 뉴요커와 여행에 지친 여행자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오아시스 같은 센트럴 파크를 많은 이들이 깊이 사랑한다.
155. 겉으로는 씩씩한 척해도 숨 쉴 틈 없는 뉴욕의 경쟁 구도에서 나만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아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울고, 전화를 매몰차게 끊고 인사조차 받지 않는 월 스트리트의 콧대 높은 투자은행 CEO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른 날에도 눈부신 센트럴파크는 내 눈물을 받아주었다.
159. 기를 쓰고 노력해도 그 나이가 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진리가 있다.
159.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은 그저 바람일 뿐, 아무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도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100%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한다.
160. 절대 잊을 수 없다 했던 일을 잊고, 절대 용서할 수 없다 했던 일을 용서하며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런 변화를 성숙 혹은 타락이라 부른다. 서른의 내게 하고 싶은 약속은,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을 터득하기보다 가끔은 무조건적인 믿음을 갖는 그런 꿈꾸는 바보가 되겠다는 것이다. 마흔이 되어 지금의 나를 돌아봤을 때 후회만 가득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이 '적절'의 잣대가 없는 뉴욕의 자유로움이 서른의 내게 준 선물이자 교훈이다.
165. 물론 20대는 분명 도전의 나날이어야 한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당장 힘들어도 열심히 달리면 분명 지겨울 만큼 오래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다만, 치열하게 달려야 하는 힘들고 불안한 시기일지라도 그 순간을 좀 더 만끽하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것이 탐나고, 서둘러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도 한 눈에 '이건 아니다, 저건 아니다' 단정 짓지 말고 좀 더 관대해지고 즐기길 바란다.
166.. "Stop saying the best is yet to come and live the moment." 뉴요커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리고 내 자신과 이 글을 읽고 있는 소중한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미래 지향적이 ㄴ삶을 살아야 한다지만 지금에 충실하지 못하면 미래에 대한 준비도 부실해진다. 더 나은 미래에 집중하기보다 '지금도' 인생의 가장 행복한 때라 생각하며 만끽하고 즐기길 바란다.
167. 의외로 'slow'의 삶을 살아가는 뉴요커들의 모습에서 내가 지금껏 얼마나 자신을 괴롭히며 살아왔는지 알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하루, 빠르게 움직이는 월 스트리트에서 오히려 여유를 찾았다.
179. 처음 언론사 도전에 실패했을 때는 굳이 기자를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스스로 꿈을 저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자가 되기를 포기하자 더 기자가, 언론인이 되고 싶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꿈을 포기했다고 스스로 인정했을 때 비로소 나는 내 꿈의 크기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다.
184. 사람 냄새나는 기자가 되는 법은 거창하지 않다. 펜의 힘을 남용하지 않고, 겸손함을 잊지 않고, '바른 언론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끼고, 늘 머리는 깨어 있고 발은 현재에 시선은 멀리 두고 사람들을 만날 준비를 하면 되는 것 같다.
187.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얼마나 좋아하는 일을 하느냐에 따라 고통의 무게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더 힘들고 덜 힘든 것의 차이는 내 안의 아드레날린이 얼마나 샘솟느냐에 달린 것이다.
190. 무엇이든 6개월은 너무 짧고 1년은 적응하기에는 적당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최소한 2년은 필요하다. 어떤 공부든 일이든 2년은 해야 '좀 했다'고 생각되고 손에 익는다.
194. 이곳에서 매니저급이 평기자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이유는 그만큼 해야 할 일이나 책임감이 늘어서이고, 그 많은 일을 끝내려면 집에 늦게 가는 게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194. 월스트리트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열심히 하는 사람은 한국이든 여기서든 성공한다는 것이다. '노력은 배신을 모른다'는 말이 있듯 자신의 일에 에너지를 100퍼센트 쏟는 사람과 70퍼센트를 쏟는 사람의 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물론 생활의 100퍼센트를 일에 쏟는 것이 70퍼센트만 일에 쏟고 30퍼센트는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다. 본인의 선호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분명 어디서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197. 21세기형 회사란 이런 곳이 아닌가 싶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없어진 지금 직원을 묶어두고 충성을 강요하기보다 현시를(현실을) 직시하고 오히려 꿈을 이루게 도와주는, 그래서 그곳에 있는 동안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회사.
210. 겉만 번지르르한 이야기로 책 한 권을 메울 수는 있어도 결코 완성할 수는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가본 길보다 가지 않은 길이 더 많은 나이지만 언젠가 나를 돌아봤을 때 "참 성실하게 써왔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인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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