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글로 생각하기
    글쓰기 2018. 9. 19. 06:10
    반응형
    다른 사람들은 고민이 있을 때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글로 정리를 하면서 풀어가는 스타일이다. 보통은 술로 푼다거나 산책을 한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먼저 복잡해진 머리를 문제에서 일단 해방시키는 방법이고, 그 이후에야 책상에 앉아서 고민을 한다거나 볼펜을 들고 해결책을 강구하기 시작한다거나 하는 단계로 접어들기 마련이다.

    글로 정리를 한다는 것은 반드시 고민에 대한 것이 아니라도 모두 적는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 고민이 되는 심리 상태라던가 하는 것들이 모두 포함된다. 예를 들어 납기일이 다 되었는데 준비중이라고만 대답을 하는 업체 담당자와 전화를 끊은 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쓴다고 보면 된다.

    해야 할 일이 제법 많다. 현장에서 제대로 돌지 않는 기계는 없는지 확인하는 데 두 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어서 납기 확인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담당자가 이 일이 처음인지 퇴사할 예정인지 그다지 신경을 쓰는 것 같지가 않다. 일단 자재는 지난 주 월요일까지는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납기를 다 채워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알았다고는 했다. 하지만 납기가 넘어가면 골치가 아파지기 때문에 정말 가지고 올 수 있는지 발주 정보를 달라고 했다. 바로 발주서를 스캔해서 메일로 보내겠다고 했기 때문에 잠시 후 메일을 보고 공장으로 전화를 해 보아야겠다. 그것만 하고 현장에 갔다 오면 퇴근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나머지 서류 업무를 볼 수 있다.

    이 방법이 좋은 이유는 산책을 하면서 느끼는 것과 동일한 안도감을 문장을 완성하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쪽으로 신경을 돌려서 스트레스를 줄인 후 조금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극적으로 줄여 준다. 산책을 하더라도 그다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을 만큼 고민이 깊어지면 산책의 효과가 거의 없다. 그냥 멍하게 앉아서 명상을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운동을 하면 도움이 되는 이유가 바로 집중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고민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스트레스에 집중하지 않도록 하는 요소들이 중간 중간에 펼쳐져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이런 활동은 메모장이든 어디든 간단하게 할 수 있지만 한 군데를 정해 놓는 것이 좋다. 사실, 개요만 그려서 될 것 같으면 ppt 파일로 작성해도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내 경우에 메모장 프로그램에 적는 것은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산책보다 더 좋지 않았다. 한글 문서 파일을 만들어서 지난 번에 작성한 다음 페이지에 이어서 쓰거나 아예 손으로 A4용지에 적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런 활동은 굳이 빨리 적을 필요가 없는 활동이기 때문에 이 기회에 손글씨 연습을 겸하는 것도 상당히 좋은 생각이다. 쓰다가 개요나 간단한 일정표, 참고 그림이 필요해도 바로 그릴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경우도 많다. 간혹 이렇게 혼자 정리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참고해야 할 자료가 완성돼서 복사해서 나누어준 적도 있다. 아무래도 손으로 쓰고 그린 것이다 보니 조금 삐뚤거리기도 하고 산만한 감이 있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컴퓨터로 작성한 것은 인쇄용, 손으로 쓴 것은 조금 불완전해도 원래 완성된 형태는 아니라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손글씨는 뭔가 더 필요하다 싶으면 그냥 추가하면 되니까.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은 글이 될 수 있다. 충동적으로 감각대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들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모두 언어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고 여기에 조금만 신경쓰면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글은 추상적인 것들을 구체화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위의 경우에는 고민거리를 시각화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시각화라고 무조건 그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앞에 그림이든 글이든 구체적인 사물로서 존재하는 한, 그것은 하나의 형태를 갖추는 것이다. 우리는 형태가 있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을 보아도 그 의도를 두려워하는 것이지 생김새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형체가 없는 고민에게 형태를 입히는 일이다. 그리고 해결책은 차분하게 그 글에 이어서 생각나는 대로 적다 보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반응형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을 날렸다  (0) 2018.10.08
    글감  (0) 2018.09.28
    독수리타법  (0) 2018.09.18
    에버노트  (0) 2018.09.14
    글을 보인다는 것  (0) 2018.09.13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