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글을 보인다는 것
    글쓰기 2018. 9. 13. 06:30
    반응형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 숨어 끄적이던 것이 내 학창 시절 내 글의 운명이었다. 가끔 글쓰기 대회에 나가기는 했지만 쓰는 것을 좋아하기만 하고 재주는 없던 소년은 수상은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그렇게 두고두고 누군가에게 보일 만한 글이 아니었기에 여기저기 짧게 메모하듯 써갈기고 나조차 읽기 함든 모양새가 되어도 부담이 없었다. 간혹 긴 글을 쓰더라도 다시 읽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지금보다는 아주 가끔이지만 그렇게 쓰고 나면 한바탕 소리라도 지른듯, 뜀박질이라도 한 듯 기운이 빠지면서 상쾌하곤 했다. 결국 쓴웃음을 지으며 한 잔의 술을 더 입에 털어놓게 되는 술자리 수다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가끔은 쓰고 싶을 만큼 답답한데 그렇게 써갈기는 것조차 녹록치 않아 더 답답했던 적도 있었다. 그럴 때는 그냥 잊어버렸다. 프라모델 조립을 하거나 게임을 했다. 엄밀히 말해 그런 활동은 그냥 집중을 하다 보니 답답하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지 답답한 게 내려가는 처방은 아니었다.

    그러던 나의 글쓰기는 블로그라는 것이 탄생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혼자 쓰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누군가는 읽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당시 엠파스 블로그를 운영했지만 조금 전에는 드림위즈에서 홈페이지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html 파일로 index부터 시작해서 파일을 업로드해 놓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 도메인에 접속해서 홈페이지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거의 웹서버 수준이라 잘만 하면 좋은 성과가 나왔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랬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해볼 만한 게 너무 많아 실제로는 첫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러다가 엠파스 블로그를 보니 블로그라는 게 사진 올리고 글을 쓸 수 있게 틀을 만들어 준 모양새였다. 온라인 글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블로그 작성 화면에서 사진 배치 같은 것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다른 곳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글을 작성해서 전부 비공개로 두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보면 환영 인사만 거창하게 있는 블로그였던 셈이다. 블로그 글을 공개하게 된 건 의외로 사진 때문이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어학 연수 중이었던 중에 빅토리아를 비롯한 몇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다른 곳들은 사진으로 남게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로얄 로드 대학에 가서 예전에 실제 성으로 쓰였던 건물들을 보고는 이런 곳도 있다고 소개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미니홈피에 올린 그 사진을 블로그에도 올렸던 것이었다. 사실 별다른 설명은 없었던 그 사진들을 공개하면서도 댓글이 겁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사진 포스트 하나 달랑 올라가 있는 블로그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내 개인 블로그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글을 올리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공개 전에 대여섯번씩 읽어보고 고치는 과정은 어쩔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읽을 것이고 심지어 나를 아는 사람들도 그 블로그로는 나라고 생각하기 힘들 것이었지만 말이다. 참고로, 당시 미니홈피에는 사진이나 많이 올리지, 글은 많이 쓰지 않았다. 짧게 짧게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대여섯 줄 적는 것이 다였다. 읽을 사람들이 거의 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블로그도 내 블로그 주소를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오히려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큼 써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글루스를 잠시 거쳐서 티스토리로 이사를 갔다. 티스토리는 거의 웹사이트 수준으로 꾸밀 수가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html을 가지고 노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 css가 들어가면서 예전 나모 웹에디터를 처음 사용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에는 엠파스 블로그에서 했던 것처럼 혼잣말 같은 글을 썼다. 그러다가 아이폰 3GS를 구매하고 나서 이런저런 오류가 난 것들을 해결하면서 결과를 올리곤 했다. 설명서 같은 글은 그때 다 쓴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그때그때 바로바로 올렸다.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회사에서 업무가 바뀌었다. 새로운 것을 할 시간도, 차분하게 앉아서 글을 쓸 정신도 없었다. 시간이 나면 잠을 자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스트레스가 항상 가득 차 있어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영어공부도 할 겸 business insider나 forbes에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글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좋은 글이 나오면 해석을 하고 다듬어서 블로그에 올렸다. 뉴스를 그렇게 한 적도 있었다. 다섯 편 정도 번역 포스팅을 올리고 나니 두 가지 정도가 확실해졌다. 첫째는 역시 뭔가 쓴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일시적으로라도 풀린다는 사실이었다. 공개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관계 없었다. 남의 글인데도 해석의 과정을 거쳐서 내 공간에 펼쳐놓는다는 자체가 도움이 되었다. 두번째는 그 동안 시간이 없어서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시간은 그 와중에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티스토리 모바일 앱에서 한 문단씩 해석을 하고 지우는 과정을 몇 번 하고 나면 글 한 편이 끝났다. 반드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한다는 규칙만 탈피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 다시 업무가 바뀌어 마음에 여유가 많이 생겼다. 확실히 여유가 생기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아졌다. 블로그 글도 쓰고 책을 읽으며 독서록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페이지가 끝나 버리는 소설들도 손에 잡혔다. 소설을 많이 읽으니 내 문체도 점점 눈에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어떻게 쓰고 싶다는 생각도, 아직 명확한 방향까지는 아니지만, 조금씩 커가고 있다.

    가끔 글의 공개를 넘어 책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글의 단순한 공개와 글을 돈 내고 읽으라고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좋은 편인 글과 읽는 사람에게 가치가 있는 글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밑줄을 긋고 그 밑줄을 찾아보기 힘들 것 같아 옮겨 적으며 책을 읽기 때문에 과연 내가 쓴 글로 책이 만들어지면 그 안에서 밑줄이 그어질 페이지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밑줄조차 그을 가치가 없는 책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은 사실 거절당할까 싶어 고백을 하지 못하는 사내의 머릿속에서 수없이 반복재생되는 가상의 거절 멘트들과 다를 게 없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블로그에 쓰는 글도 조금 더 정성을 다하게 되고 구글 keep에서 끄적이는 글에도 조금씩 다른 글에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글마디가 생겨난다. 이것도 이제까지 내가 겪어온 글쓰기 여정의 계속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부담도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글을 남에게 보인다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반응형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수리타법  (0) 2018.09.18
    에버노트  (0) 2018.09.14
    글쓰는 환경  (0) 2018.09.12
    갈구  (0) 2018.09.11
    글의 용도, 쓰기의 용도  (0) 2018.08.24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