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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의 용도, 쓰기의 용도
    글쓰기 2018. 8. 2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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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세상은 문서로 이루어져 있다. 수많은 글들이 마치 전단지처럼 사방에 널려 있다. 책처럼 두툼한 묶음도 있고, 한 페이지의 A4용지나 심지어 메모지 같은 크기의 쪽지도 있다. 그런 것들이 중구난방으로 쌓여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 세계이다. 그러니 검색 엔진이나 일정한 규칙에 의거해서 철저하게 분류된 문서만 저장하여 제공하는 웹사이트들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대접을 받는 것일테다. 실제 세계처럼 인터넷도 작은 메모지는 어쩔 수 없이 소멸되어 버리고 누군가 하나의 묶음으로, 책의 형태로 크기를 키워야 어느 정도 보존의 가능성이 보이는 그런 세계였다면, 지금처럼 낚시 페이지 몇 개로 조회수를 올리고 광고를 판매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결국 특정한 기준으로 문서를 분류하고 버릴 것을 결정하는 관리자가 있는 논문 관리 사이트 같은 것들만 살아남았을지 모른다.
    여기서 글의 뭉치라는 것은 우리가 작성하는 메모나 장문의 글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얼마든지 있다. 웹페이지를 위한 수많은 스크립트와 코드들도 웹문서이지만 우리는 글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따라서 글이라는 것은 문서와 동의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이 글에서 뜻하는 글은 산문을, 글쓰기는 코드 작성 같은 것을 모두 제외하고 고전적인 언어적 표현으로서의 글쓰기만을 뜻한다.
    글은 하나의 표현이다. 이렇게 모든 글을 수용할 수 있는 인터넷은 어떻게 보면 그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관점을 제공하는 검색 사이트가 없다면 모든 글에 대해 완전히 평등한 자격을 준다. 모든 문서와 표현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저장이 된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를 천차만별로 판단하겠지만 저장 장소 입장에서는 똑같이 용량을 차지하는 하나의 데이터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이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고 표현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글의 형태로 표현한 것을 인터넷상에 공개한다는 것은 내 글을 인터넷 상의 다른 데이터와 기본적으로 같은 입장으로 만드는 것, 객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이 그 문서을 접하고 글로서 읽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때 가서야 그 글에게는 데이터 용량 외에 없었던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는 것이다. 글의 용도가 어떤 정보를 나누고 독자가 거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는 것이라면,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는 쓴 글을 공개까지 하여야만 완성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블로그의 용도가 대부분 정보 전달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다 읽을 때까지 윤곽을 잡아야 하는 문장들보다 객관적인 정보에 대해 보다 긍정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함께 느끼고 동감하려면 글쓴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하는데 인터넷에서 글로 처음 만난 사람과 그렇게 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를 전달하는 글은 다르다. 알아듣기 쉬우면서 틀리지 않은 글은 신뢰도가 상승함에 따라 호감도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 정보가 희소성이 있을수록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블로그들도 새로운 소식들을 단순 전달하는 것이 많은데 그것이 유효한 전략으로 남게 된 것에는 시간적 차원에서 정보의 희소성이라는 것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내 경우에는 그런 글쓰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뉴스 성격의 글을 쓰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남들처럼 소문을 옮기는 것을 좋아하고 어디선가 들은 것을 누군가 주변에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 블로그에도 그런 마음으로 올린 정보성 포스팅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정보를 찾아 헤매거나 특이한 게 없는지 찾아다니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심지어 회사에서도, 그 전에 학교에 다닐 때에도 내가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라면 내 주위에서도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알게 되었는데도 주변에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은 내가 우연찮게 그 주제에 대해 궁금해서 알아본 경우가 많고 그것도 최신 정보라기보다는 단순히 업데이트되어 기존의 정보가 잘못된 취급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보보다는 나의 마음에 중점을 둔다. 머릿속의 생각들이 정리되는 대로, 혹은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손의 힘을 빌려서 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조금 인기는 없더라도 인터넷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다른 곳에 없는 나만의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새로운 사실을 알리거나 유행을 선도하는 것은 안 되니 두고두고 읽을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도 만족하기 힘들다. 하지만 자료의 총량 또한 중요한 법이어서, 계속해서 써내려가지 않고는 그 기본적인 목표도 달성하기 힘들다. 어떻게 해야 그 목표에 닿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쉬지 않고 매달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 하나만은 확실하다.
    내 쓰기는 그래서 글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글은 어쩔 수 없이 '그 안에 든 생각의 표현'이라는 용도가 정해져 있게 되지만 나의 쓰기는 그 글들의 생산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닌 것이다. 그 글들의 모음을 만드는 것도 물론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인 부분일 뿐이고 결정적인 목적은 매순간 이어지는 순수한 '쓰는 행위'를 통하여 쉬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해서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확실한 이상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 쓰기를 멈추거나 쓸 것을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것은 그래서 나에게 위험하다. 일상에서 생기는 일을 가지고 바로바로 태세를 전환하여 쓰기 시작할 수 읶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멈추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체계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글쓰는 일이 직업이 아니라서, 압박감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다만 글에서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 때면 마치 숙제를 다 하지 못한 어린이처럼 뭔가에 몰두하면서도 글쓰기 어플과 블로그 생각이 난다. 정 안되면 마치 도마에 물기만이라도 유지하려는 듯 아무거나 쓰기도 하고 계속해서 메모하며 책읽기만 해낼 때도 있다.
    한편으로는 쓰기를 계속하기 위해 신경이 쓰이는 것까지 포함한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있어서 쓰기이다. 하지만 그 결실은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내 글쓰기라는 것에 결실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지 없을지조차도 모르지만 뭔가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일지조차 모르지만 글쓰기의 끝에 있을 그것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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