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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책상에 앉아라
    글쓰기 2018. 8.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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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셜록홈즈의 원 소설에는 어떤 계기로 되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셜록에서는 왓슨이 셜록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옮기게 된 계기가 스스로의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기를 써 보라는 의사의 권고 때문이었다. 어떤 일이 있었든 간단하게라도 블로그에 글을 써 보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블로그가 있고 그중 대다수가 버려지거나 스팸의 통로로 이용되는 현실에서 새로운 블로그를 개설해서 ‘운영’해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끄적이는 도구로 사용하라는 것은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충고인 것 같다.

    드라마에서 보면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계산 끝에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를 하는 주인공들을 많이 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게 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말을 하면서 점차 생각이 다듬어지는 것을 자주 본다. 대화 중에 그럴 수도 있고 혼잣말하는 와중에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대화는 건설적으로 진행할 수 있지만 혼잣말은 그렇지 않은데다가 휘발성도 굉장히 강해서 방금 내가 중얼거린 말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확실히 혼자 생각을 발전시킬 거라면 혼잣말보다는 글을 쓰는 편이 훨씬 낫다. 특히 산문 형태로 쓰다 보면 생각의 순서가 정리가 되고 그 순서대로 정리하고 나서 요약을 하면 충분한 결론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책상에 앉는다. 마음을 가라앉힐 용도이든 하루를 계획할 용도이든 상관없다. 무작정 앉으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며 밑줄칠 만한 구절이 나오면 기록을 한다. 그렇게 기록을 하다 보면 적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때가 있다. 그러면 간단하게 메모를 한다. 물론 그 이야기를 모두 적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달라질 내용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록으로 남기면 언젠가 보겠지만 기록한다는 그 행동 때문에 요지는 기억에 남는다. 학창 시절에도 외울 것이 있으면 쓰면서 외우는 스타일이었는데 반대로 뭔가를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씀으로써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다. 

    이쯤되면 생각은 책상 앞에 앉아서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에게 있어 사고의 발전은 책상에서 이루어진다.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나, 어플에 끄적거릴 때나 문서를 작성할 때 모두 내가 평소 글을 쓰는 그 속도, 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그 속도로 생각이 발전한다. 오래 생각하면 더 좋은 생각이 나오겠지만 서두른다고 좋은 생각이 빨리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두 내가 인위적으로 노력한다고 글이 빨리 써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일단 써 보는 것은 내 경험상으로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아니, 더 좋은 일일 수 있다. 남의 책을 읽고 거기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써 보는 것은 의외로 좋다. 한 권을 앉아서 다 읽고 나면 내가 옮겨 적은 구절들을 꿰뚫는 아이디어와 말투가 보인다. 그 다음에 글을 쓰게 되면 그 말투가 글에 묻어난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은 모방이라며 싫어할 수 있겠지만 나는 뭔가를 배운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내용은 없이 말투만 따라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최소한 생각을 발전시킨 논리라도 배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따라하기이지만 따라하기가 겹치면 점차 내 글이 나올 것이다. 언제나 내 블로그는 이제까지 썼던 포스팅보다 더 나은 포스팅이 나올 가능성이 있을 것이고, 어느 포스팅이나 완벽한 글이기는 힘들더라도 그 이전에 썼던 포스팅보다 나은 부분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전의 글과 지금의 글 사이를 가득 채운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이 그저 흘러간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는 모든 시간들 사이가 조금이라도, 짤막하더라도, 아무리 하찮더라도 생각의 조각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작정 습관처럼 책상에 앉더라도, 손가락의 움직임 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담긴 책을 읽기만 하더라도 책상은 발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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