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글쓰는 환경
    글쓰기 2018. 9. 12. 07:00
    반응형
    가끔 나에게 서재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다. 전업 작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내 글을 남에게 보일 정도가 되어 집에서도 당당하게 "글을 쓰겠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면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과연 그런 정도가 되었을 때 나에게 글 쓰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커다란 책상이 창문을 등지고 있을 것이다. 원목으로 된 책상일 필요는 없다. 마트에서 사온 조립식 책상이어도 관계 없다. 중간에 뭔가 튀어나와 있어 무릎을 부딪힐 일만 없다면 책상의 구조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 하지만 크기는 중요하다. 창문에 대어 놓을 것이라면 작아도 상관이 없지만 창문을 등질 때는 아무래도 큰 게 낫다. 창문에 대어 놓지 않는 이유는 밖을 조금 더 잘 보기 위해서이다. 글을 쓰면서 내다보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 독서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던 나에게 창문에 닿아 있는 책상, 그리고 공부를 하다가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던 모습은 그다지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아파트 구조상 하늘은 조금 더 좁아졌고 우리 동을 감싸는 주위의 단지는 하늘을 찌르는 모양새여서 조금 답답한 감이 있는데, 이런 느낌은 희한하게도 오히려 아래를 바라보면 많이 나아졌다. 하늘이 좁아졌지만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공간을 보면 그 느낌이 상당히 포근하게 다가온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아예 고층으로 가서 단지 밖을 향하는 방이나 아니면 아파트 단지 안쪽이라면 저층이 좋다. 그렇게 방에 들어가서 창문을 등지고 자리잡은 의자에 등받이에 기대고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이 삐쭉삐쭉한 아파트 건물에 여기저기 찔려 있다. 그 사이로 뭉게 구름이 아기의 엉덩이처럼 살짝씩 보인다. 다시 책상으로 고개를 돌리면 책상의 크기에 걸맞지 않게 조촐하게 올라가 있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우선 당연히 가운데에는 노트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실리콘 키보드 덮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모니터를 덮어 둔다. 그리고 왼쪽에는 글을 쓰지 않는 공간일 때 읽을 책들이 독서대와 함께 서너 권 쌓여 있을 것이다. 빌려온 소설책과 잡지 같은 것들. 그리고 노트북 너머로는 성경이 있다. 모니터를 열면 성경은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책상은 꽉 찬다. 책상 위에 빈 공간이 있더라도 그 공간은 책과 노트북과 함께 놓아둔 공간인 셈이다. 여기서 뭔가를 더 놓는 순간 책상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공간이 아니라 뭔가를 놓아두는 진열대로 변하고 만다. 글을 쓸 때와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물건들과 공간으로 채우고 나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

    창문 옆에는 책꽂이가 있다. 나머지 책들은 이 책꽂이로 꽂힌다. 책꽂이는 벽면에 면하고 그 옆 벽에도 다른 책꽂이가 있다. 창문 옆에 있는 책꽂이에 있는 책들은 의자에 앉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방에 들어올 때에는 책상과 함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공간이다. 아이러니다. 이 책꽂이에는 각종 전집류를 꽂아둔다. 옆 벽에 있는 책꽂이에는 나름대로 정리한 순서대로 단행본들과 잡지들이 꽂힌다. 책상에서 둘러보면 가장 눈에 잘 들어오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약간의 산만한 구조가 마음에는 더 자연스럽게 느껴져 눈에 특별하게 띄지 않는다.

    이것이 전부이다. 생각보다 단촐하다. 나도 쓰면서 많이 놀랐다. 사실,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지금 사용하는 책상은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 그 방과 지금의 차이는 단지 별도의 방이 있다는 것, 그리고 창문을 등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책상 위에 뭔가가 많이 있지만 그다지 방해는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많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쓸 공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글이 머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만족해야겠다.

    반응형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버노트  (0) 2018.09.14
    글을 보인다는 것  (0) 2018.09.13
    갈구  (0) 2018.09.11
    글의 용도, 쓰기의 용도  (0) 2018.08.24
    일단 책상에 앉아라  (0) 2018.08.23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