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1년여에 걸쳐 이제 거의 다 읽었다. 필자의 원래 책 읽는 습관 자체가 책 한권을 끝까지 마칠 때까지 다른 책을 못읽는 것이 아니라 지루해지면 몇 번에 걸쳐서 이어 읽는 스타일이라 오래 걸린 것이다. 사실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 취미로 읽는다고 해도 미술과 미술을 하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는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모든 도판이 컬러로 되어 있어 탐났지만 가격 때문에 엄두도 못내던 것을 취업을 하면서 노리다가 2008년도에 구입을 하였다. 하지만 한동안 훑어보기만 하다가 이제야 다 읽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부터 지금까지를 일관성 있는 관점으로 그림을 보는 시각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어떤 면에서 현대미술이 어려운지, 또는 뜻깊은지를 알아보게 된다. 그 관점이라는 것은 다름아닌 존재와 인식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써 놓으니 오히려 어렵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렇기만 한 것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어떻게 사실감 있게 표현할 것인가, 또 그렇게 나타낸 것은 완벽한가 하는 문제는 어릴적 수채정물화를 그려볼 때부터 하던 고민이 아니던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눈앞에 있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뒤틀거나 무의식적으로 빼먹고 강조하는 것은 없는가, 빛이 비추는 모습 그대로 2차원에 옮기면 우리의 뇌는 그것을 다시 3차원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 이러한 고민들과 시도들의 역사, 특히 관찰자가 보기에 실감이 난다는 차원에서 '베끼기'에 열중한 그 동안의 미술과 작가의 느낌을 전달한다는 '의사 전달'에 주목하는 현대 미술이 잘 대비가 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주관성이 개입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모든 시도 자체가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 이것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하겠다.